“마이콜이 쓰레기랑 보라 소개팅 시켜주는 거네.”
‘응답하라 1988’(tvN)의 방송 초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은 이미 ‘성지’가 될 조짐이 넘쳐났다. 네티즌들은 어디서 많이 봤던, 그런데 교복을 입고 나온 서른일곱의 노숙한 고등학생을 한 눈에 알아봤다. “무리수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이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적잖이 반가웠나 보다. ‘마이콜’은 ‘응답하라 1994’에 이어 이번에도 ‘마이콜’이었다. 두 드라마의 연결고리가 된 마이콜로 인해 네티즌들은 무수한 추리를 쏟아냈다. 지난달 26일 방송에선 “마이콜 따라 의대가게?”라는 대사도 나왔다. 1988년 쌍문동에서 성장해 1994년 의대생이 된 인물, 쓰레기(정우)의 친구이자 선우(고경표 분)를 비롯한 쌍문동 5인방의 친구. 네티즌들은 마이콜을 두고 “‘응답하라’ 시리즈의 세계관을 연결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응팔’ 멤버들이 포상휴가를 떠나던 날, ‘마이콜’ 김중기를 만났다. “이 나이에고등학생으로 나와도 되나 싶었는데… 감독님이 정말 이상하세요. 현장에 가면 ‘중기, 학생 같지 않아?’ 이런 말을 자꾸만 하세요. (웃음)”
‘응답하라’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드라마 ‘송곳’(JTBC), 영화 ‘전국노래자랑’, ‘남영동1985’ 등을 통해 얼굴을 알렸다. 이미 낯익은 30대 후반의 배우는 11세나 어린 고경표와 친구가 됐다. 애초엔 1회분에 딱 한 번 출연 예정이었으나, 이후 몇 번을 더 불려갔다. “대본은 제 분량만 받기 때문에 제가 두 편을 연결하는 고리 같은 캐릭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멋쩍게 웃더니 “아휴. 그런 제가 무슨 인터뷰예요”라며 난감한 기색을 보인다.
김중기의 스크린 데뷔는 그리 빠른 편은 아니다. 영화와 뮤지컬을 좋아했던 대구 소년은 군 제대 후 “오래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서울로 상경했다.
“싫증을 잘 내는 편이었어요. 뭘 해야할까 계속 생각하다 중학교 때 시민회관 공연을 혼자 보러 가던 기억을 떠올리며 뮤지컬을 하면 꾸준히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가 스물셋, 고시원에서 생활하다 명지대 사회교육원을 통해 뮤지컬과 1기 수업을 들었다. 공연계에 먼저 들어가 뮤지컬과 연극을 오가며 생활하다 서른이 돼서야 데뷔작인 영화 ‘바람’(2009)을 만났다.
‘바람’은 김중기에게 “잊을 만 하면 생각나고, 또 생각나는 영화”가 됐다. 그는 영화에서 주인공 친구인 ‘마이콜’ 역할로 스크린과 만났다. ‘응답하라1994’에 처음 등장했던 ‘마이콜’의 탄생비화다.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는 영화 ‘바람’을 접한 뒤 정우를 캐스팅했고, 주인공의 친구가 있었으면 싶어 김중기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그 캐릭터가 ‘응답하라’ 시리즈 안에 그대로 들어왔다.
“전 대본에 주어진대로만 했어요, 친구라니까 편하게, 고민할 것도 없이 마이콜이 됐죠.” 무뚝뚝하지만 장난기가 있는 김중기의 모습과도 닮았다.
정작 자신이 연기하는 ‘마이콜’이라는 인물의 성향은 “방송을 보면서 알게 됐다”고 한다. “만 원 받고 비디오를 파는”, “오토바이도 타는”, 그러면서도 목표가 확실해 “의대 진학을 정해둔” 고교 2년생이었다.
“제 대본엔 없는 내용이었어요. TV를 보면서 ‘아, 마이콜이 저런 애였구나’, ‘마이콜 너 의외로 나쁜 아이였니?’ 하면서 마이콜을 알아갔어요. 하하.”
드라마는 이전처럼 ‘남편찾기’ 추리가 큰 축이 됐고, 현장에서도 철저한 보완이 이뤄졌다. “전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인 줄 알았어요. 처음엔 어남류로 시작해서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최택) 분위기로 흘러가더라고요. 감독님, 작가님께선 그러다 어남류로 다시 방향을 틀겠구나 싶었죠.” 결과는 달랐지만 출연배우에게도 이 추리는 소소한 재미를 안겼다.
나이만으로만 보면 ‘응칠’ 세대인 김중기에게 가장 재미있게 본 ‘응답하라’ 시리즈는 ‘1997’이었다고 한다. “친구가 ‘응칠’이라는 드라마가 너무 재밌다고 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센세이셔널했다”고 김중기는 떠올렸다. “시트콤 같은데 시트콤도 아니고, 드라마 같으면서 드라마가 아닌 굉장히 파격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었다. 이후 ‘응답하라 1994’에 캐스팅이 됐지만, “‘응칠’의 임팩트가 너무나 강렬해서 잘 안 될 줄 았았다”고 한다.
“드라마는 너무나 좋았는데, 이렇게까지 잘 될 줄 몰랐죠. 두 번째 편은 징크스도 있잖아요. ‘응팔’ 역시 두 번이나 잘 됐기 때문에 안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또 대박이 나고, 출연분량이 늘고, 많은 분들이 점점 알아보시더라고요.”
매니저도 없이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김중기에게 그 관심과 시선은 낯설면서도 즐겁다. “아휴, 착하게 살아야겠더라고요.”
아직 특별히 결정한 작품은 없지만 김중기는 올 한 해 “더 많은 일을, 오래 하고 싶다”고 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일이 안 들어오면 백수생활을 하게 돼요. 조바심이 날 때도 있지만 그저 오래 일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가짜를 진짜처럼 보일 수 있게 거짓말을 잘할 수 있을까, 거짓말을 잘 하는 배우가 돼야죠. 저 배우는 참 잘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게 올해 목표예요.”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