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유가족에 죄송” 시민들은 “가식적이다” 분통

30대 남성이 강남역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에 대한 현장검증이 사건 일주일 만인 24일에 이뤄졌다. 피의자 김모(34) 씨는 피해 여성과 유가족에 사과했지만 시민들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노려 흉기로 무참히 찌른 김 씨의 범행에 분통을 터뜨렸다.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날 오전 9시께 김 씨가 범행을 저지른 서울 서초구의 한 노래방 공용 화장실에서 현장검증을 진행했다. 오전 8시 30분 경 서울 서초경찰서를 나선 김 씨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호송차량에 올랐다.

비가 오는 가운데 범행 현장에는 경찰 병력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를 섰다. 인근 상인 및 행인 30여명이 우산을 들고 인근 골목길을 가득 메워 이번 사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이날 현장 검증을 지켜본 시민들은 김 씨의 범행으로 일상이 공포로 바뀔 수 있다는 점에 경악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특히 김 씨가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노렸다는 점에 분노를 표출하는 여성 시민들이 많았다.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김씨 “피해자와 유가족에 죄송”
24일 오전 ‘강남역 노래방 살인 사건’의 현장검증이 이뤄졌다. 인근 지역에 근무하는 직장인과 주민들은 불특정 여성을 노린 김모 씨의 범행에 분노감을 드러냈다. 김 씨가 현장검증을 위해 범행 현장인 노래방에 들어서고 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조별 모임을 위해 강남에 왔다는 이모(25ㆍ여) 씨는 “여기에 자주 나오는데 이런 번화가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고 무서웠다”며 “특히 여자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니 더 무섭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그는 “예전과 달리 이제는 밤에 집에 갈때 엄마한테 전화를 꼭 하고 들어간다”고 했다.

주민 이은선(60ㆍ여) 씨는 “나도 딸이 있는데 내 딸이 저렇게 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부모라도 미칠 수 밖에 없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오전 8시 55분 께 범행현장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노래방 건물에 도착한 김 씨는 입구 앞에서 잠시 멈춰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그는 현재 심경에 대해 “담담하다”면서 “(피해 여성에 대해) 개인적인 원한이나 감정은 없고 어찌됐든 희생돼서 미안하고 송구하다”고 말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선 “(수사과정 중) 말했고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얘기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범행 대상으로 여성을 고른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꼈다.

김 씨가 피해자와 유가족에 사과의 뜻을 밝혔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인근 사무실에서 일하는 박민선(28ㆍ여) 씨는 “범인이 미안하다고 했는데 가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경찰은 30여분간 진행된 현장검증을 통해 김 씨가 범행 장소로 이 건물의 남녀 공용화장실을 고른 이유, 범행 전 몸을 숨긴 장소와 방법, 앞서 화장실에 들어온 남성 6명을 보내고 피해자 여성 A(23ㆍ여) 씨를 흉기로 찌르는 과정 등 범행 과정 일체를 확인했다.

한증섭 서초경찰서 형사과장은 “김 씨는 진술대로 범행을 재연했고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재연과정에서 김 씨는 피해자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표정을 지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지난 17일 새벽 1시 30분께 A 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김 씨를 19일과 20일 두 차례 심리면담했다. 경찰은 분석 결과 전형적인 피해망상 조현병(정신분열증)에 의한 묻지마 범죄 유형에 부합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2003년부터 “누군가 나를 욕하는 것이 들린다”고 호소하며 피해망상 증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26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원호연ㆍ김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