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낚시철 맞아 ‘꾼’ 몰린 한강 -“예전엔 수십마리 잡혔는데…” -“번식환경 파괴”…치어도 씨말라
[헤럴드경제=신동윤ㆍ박로명 기자]강물위로 어둠이 짙게 내려앉기 시작한 지난 11일 오후 8시께 서울 마포구 망원 한강공원. 고등학생이던 17세부터 아버지를 따라 얼음낚시를 즐겼다는 ‘베테랑 낚시꾼’ 김모(52) 씨의 몸놀림이 갑자기 바빠졌다. 한강물에 던져뒀던 김 씨의 낚시대 부근 수면위에 놓여있던 찌가 수차례 오르락내리락했기 때문이다. 힘차게 잡아챈 낚시대가 크게 휘어지자 김 씨는 낚시줄을 감았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물고기의 힘을 빼기 시작했다. 몇 분 간의 힘겨루기끝에 25㎝는 족히 되는 ‘발강이(새끼 잉어)’가 물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 50~60㎝ 크기는 돼야 가져가지, 작은 놈들은 그냥 놓아줘요.” 이런 말을 남기며 김 씨는 애써 잡은 물고기를 놓아줬다. 손맛을 느끼기 위해서 낚시를 즐기는 만큼 웬만한 물고기는 모두 놓아주고 있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하지만, 최근엔 한강에서 물고기를 낚는 것이 예전에 비해 훨씬 힘들어졌다. 김 씨를 비롯해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한강 강태공’들은 그 이유로 이명박 정부 때 실시한 ‘4대강 사업’을 꼽았다.
김 씨는 “4대강 사업 당시 강 하류 곳곳에 보를 설치하면서 물고기들이 강 상류와 하류를 자유롭게 오가지 못하게 됐다”며 “강이 아니라 거대한 수족관처럼 바뀌다보니 치어가 상류로 올라가지 못하고, 산란 등 번식을 제대로 못하게 된 물고기들의 종류도 그만큼 줄고 있는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실제로 한강에서는 붕어와 잉어, 메기, 베스, 향어, 납자루, 강준치, 누치, 빠가사리 등 민물 어종을 비롯해 바다와 민물을 오가며 서식하는 학꽁치, 숭어, 점농어 등도 많이 잡혔다.
한강공원 등에서 수년째 낚시를 하고 있다는 박모(30) 씨도 “4대강 사업을 하기 전엔 한강으로 낚시를 한 번 나오면 숙련된 낚시꾼들의 경우 수십마리씩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며 “4월 중순이면 본격적인 한강 낚시철이지만 이젠 5~10시간씩 낚시를 해도 한 마리도 못잡고 허탕치는 날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며 한강수계에 총 3개보를 설치했다. 당시 정부는 생태이동을 유지하기 위해 어도를 설치했지만 설계와 시공이 부실해 어류의 이동이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또 대형보 설치로 인한 수질오염과 침수, 생태계 훼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서울 내 한강공원의 어종 및 어획량 감소가 4대강 사업으로 인한 하천의 호소화 및 생태계 교란을 상징하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정규석 녹색연합 팀장은 “4대강 사업 이후 많은 강에서는 유수성 어종은 줄고 정수성 어종만이 많아졌다”며 “낚시꾼들의 입장에서는 잡을 수 있는 물고기가 많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수성 어종은 흐르지 않는 물을 좋아하는 오염에 내성이 강한 어종이다. 실제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2010~2012년 4대강 16개보 설치 전후의 수생태계 영향평가를 조사한 결과 2010년 한강에서 496마리가 관찰됐던 정수성 어종은 2012년 884마리로 1.8배 증가했다.
장기적으로 수생태계 파괴로 인해 어종 다양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물고기들은 종의 특성에 따라 자갈이나 모래, 수초 등에 알을 낳는다”며 “보와 보 사이를 사다리꼴 모양 단면으로 획일화시켜버린 4대강 사업으로 인해 다양한 물고기들의 산란처가 실종되는 등 서식환경이 심각하게 파괴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이어 ”어종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치어들의 움직임 역시 4대강 사업 이후 사라지다시피 했다”며 “당장 조사를 진행한 낙동강만 봐도 토종 치어는 없고 베스 같은 큰 물고기만 잡히는데, 장기적으로는 토종 물고기를 먹고 사는 베스까지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