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확진자 발생으로 본 공연계 현주소
전체 공연의 60% 비중 ‘4000억 뮤지컬 산업’ 위기
티켓 취소·대관료 환불 ‘100억대 손실’ 해법 막막
공연 강행 선-악 넘어 그들에겐 생존의 문제
정부 지원 소극장 중심…대형 뮤지컬엔 역차별
프리랜서 위한 예술인 고용보험 정착화 시급
뮤지컬 업계 사상 초유의 악재가 덮쳤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산으로 하나둘 막을 내린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태 장기화로 ‘셧 다운’ 된 것도 모자라 대형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출연 배우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며 공연 업계를 향한 시선이 달라졌다. 결국 4000억원 규모의 뮤지컬 시장이 휘청이고 있다.
업계가 처한 상황은 참담하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3월 공연계 매출은 91억원에 그쳤다. 코로나19 확산 전인 1월 매출(404억원)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 수준이다. 대형 뮤지컬의 손해는 더 심각하다. 공연이 올라가기까지 들어간 막대한 제작 비용으로 피해 금액 역시 수십억원 대를 넘어선다.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의 현재 손실액은 100억원 대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연간 4000억원에 달했던 뮤지컬 시장은 1000억원 대로 곤두박질칠 것”이라며 우려했다.
▶ “공연은 생계”…멈출 수 없었던 속사정=‘오페라의 유령’ 사태 이후 업계에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도 공연 강행을 납득할 수 없다는 여론이 대다수다. 냉담해진 분위기에 재개를 앞둔 공연조차 다시 문을 열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에도 공연을 멈추지 못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공연은 수요자의 입장에서 보면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차선책이지만, 공연 종사자에겐 생업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뮤지컬은 공연 분야 종사자 80%의 생계를 해결하고 있을 만큼 전체 공연계를 떠받치는 산업이다. 공연계 매출에서 뮤지컬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88.6%에 해당하는 80억 8873억원이나 된다. 업계에선 결국 생계 보존을 위해 공연을 이어온 것이다.
사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연대를 통해 공연을 ‘전면 중단’하자는 고민도 나왔다. 이 이사장은 “우선 중단 결정을 내린 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고자 했으나, 현실적인 지원책이 없었다”며 “공연을 중단했을 때 발생하는 티켓 취소나 대관료 환불, 프로덕션의 사전 비용, 프리랜서의 생계 문제를 보장할 방법이 없어 자발적 연대로 인한 중단이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결국 공연 강행과 중단을 두고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고 선을 그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문을 닫을 경우 ‘줄도산’의 길을 걷기 때문이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공연은 종사자들의 주수입원이고 생계인 만큼 중장기적으로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여러 아이디어를 모색하고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이후…공연업계는 어디로?=코로나19는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위기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공연 중단’이 모두의 안전을 위한 해답이라고 볼 때, 현재와 같은 재난을 맞으면 공연업계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현 상황은 그간 뒷전으로 밀렸던 문화예술계에 대한 지원책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시각이 많다.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국내 공연업계는 안전장치가 없어 단기적인 대응책으로는 답을 낼 수 없는 상태”라며 “그렇다고 기존의 문제를 따지기엔 사안이 시급하다. 지금부터는 장기적으로 공연의 본질을 보존할 수 있는 정책적 토대를 마련하고, 생존의 전략들을 구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뮤지컬협회에선 뮤지컬 업계 차원의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뮤지컬 산업이 공연 시장의 60%를 차지하는 만큼 업계의 피해가 조사되는 것은 공연 시장 전체의 피해를 집계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에서다.
이 이사장은 “제작 예산으로 보면 뮤지컬은 기초 예술과 비교해 피해 규모가 막심하다. 하지만 이러한 피해에도 정부 지원책은 소극장 중심으로 짜여 있어 실질적 지원책이 되지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큰 작품일수록 피해 규모가 더 큰 데도, 대형 뮤지컬이라고 정부 지원에서 제외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꼬집었다.
업계에선 공연 비즈니스는 생업인 만큼 ‘생존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공연 중단으로 인한 지원책이 마련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공연장과 프로덕션 양쪽의 피해를 가져오는 대관료 환불 관련 지원책, 세제감면 혜택이나 대출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은다. 이 이사장은 또한 “가장 심각한 상황에 놓인 개인 창작자, 기술 스태프, 배우와 같은 프리랜서들이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예술인 고용보험의 현실화로 공연이 중단돼 실업 상태에 놓이는 프리랜서들이 수혜자가 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 교수는 “장르적 특수성을 고려한 세분화된 법안으로 사회적 여건과 국민 인식을 고려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공연업계에서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인식의 변화’다. 원 교수는 “공연이 여유롭고 배부를 때 향유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라며 “공연은 생활이고 생계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 교수는 “공연예술은 누군가에겐 생업이지만, 누군가에겐 사치제로 인식되고 있어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대형 기획사 관계자도 “공연 분야는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가장 마지막에 회복된다”며 “업종 관계자들의 생계라는 점을 인식하고, 의식주처럼 함께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