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초의 사립미술기관인 매그재단에서 작가 김민정(62)의 이름을 내건 전시가 개막했다. 한국 작가로서는 지난 2018년 이배에 이어 두 번째다.
프랑스 생폴드방스의 매그재단에서 열린 김민정의 개인전 ‘Mountain’에 작품 7점이 걸렸다.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알베르토 자코메티, 조안 미로 등 찬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에 한지 위 수묵과 채색을 넘나든 회화가 자리를 차지한 것. 매그재단은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현대미술 재단 중 하나다.
김민정은 “이배 선생님이 숯 작업을 통해 전한 정신적인 울림처럼, 저 역시 종이라는 재료를 통해 깊이 있는 감성과 정신을 전달하려 한다”며 “우리의 작업이 뿌리 깊은 재료 속에서 공명하며 연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소회를 전했다.
전시장에 선보인 대표 연작 ‘Mountain’은 작가가 파도와 물결 소리를 시각화 한 작품인데 어째서인지 그 모습이 아득히 이어진 산의 능선을 떠올리게 한다. 작업 중에 마음 깊은 곳 잠들어 있던 고향 광주의 산을 떠올렸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그의 내면이 필치에 고스란히 깃들리면서, 우연적이고 극적인 농담과 번짐으로 물과 산, 존재와 부재의 경계가 한지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선을 그리기도 하지만 선을 태워서 없애면서 나오는 선이 있다 지워지는 선들이 뜨거워서 없어지는 선들이 더 자유로운 선들이다
이번 전시에는 작품 ‘Mountain’에서 남은 부분을 자르고 불로 태워 재구성한 ‘Nuit de la mer’도 소개됐다. 물에서 산이 된 작품의 흔적이 다시 물의 형태로 재탄생하는 순환과 재생의 의미를 은유한다. 특히 불을 다스려 한지를 태워 드러내는 선’은 작가가 자연과 하나되는 명상적인 협업이다. 작가는 “한지 위에 먹과 불꽃의 흔적을 쌓아 올리는 작업은 마치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 겹 한 겹 인내와 정성을 쌓아 올리는 여정과 같다”며 “반복과 절제는 저를 다스리고, 그 과정에서 제 내면은 더 단단하게 자라나는 경험을 한다”고 전했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지난 30여 년간 서예와 수묵화의 전통을 탐구하면서도 이를 현대 추상화의 구성 어휘로 확장하고자 했다. 남성 작가들이 주를 이루던 1980년대 한국 화단을 직면한 뒤 이탈리아 밀라노의 브레라국립미술원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2000년대부터는 한지를 자르고 태워 그을리는 작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겹겹이 쌓인 먹과 불꽃의 흔적이 그의 손끝에서 선이 된 시기다. 그렇게 자연의 힘으로 만든 선이 전통과 현대라는 두 세계 안에서 어우러져 하나의 결로 울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동아시아 서예와 수묵화의 깊은 뿌리에서 자라난 전통을 품고, 이를 현대 추상화의 흐름 속에서 찬찬히 확장해 왔다. 한지와 먹은 그 여정 속에서 작업의 뿌리이자 중심으로 전통을 품고자 하는 제 경계를 지켜주는 매개체 역할이 됐다”며 “서양의 미학에서 얻은 영감을 작품에 담아내더라도, 결국 한지와 먹이라는 전통의 언어로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