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 다시 상승폭 커져…정부, 23전 23패?

다주택자와 전쟁을 선포한 정부, 대놓고 ‘집값 떨어져라’

국민 갈등 키우는 정부…유주택자vs무주택자 반목 커져

임차인vs임대인, 2030vs4050 등 곳곳에서 터지는 갈등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0.02%. 11월 첫째 주 서울 주간 아파트값 상승률이다. 정부가 ‘7·10부동산대책’ 등 강력한 규제대책을 내놓은 직후인 8월 이후 10주 연속 0.01% 변동률로 변화가 없다가 11주만에 상승폭이 다시 커졌다. 경기와 인천 오름세는 심상찮다. 특히 경기는 이번 주 0.23% 올라 전주(0.16%) 대비 상승폭이 0.07%포인트나 확대됐다. 가을 이사철 급등한 전셋값이 집값을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선 이번에도 정부가 패배했다고 본다. 막강한 세금 강화 대책이 담긴 ‘7·10대책’과 보완대책인 ‘8·4대책’도 결국 집값을 잡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다. 결과적으로 ‘23전 23패’다. 정부는 다시 ‘24번째 부동산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갈등만 커졌다’…지금 대한민국 부동산은 전쟁중[부동산360]
서울 남산서울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모습[헤럴드경제DB]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과 전쟁을 치루고 있다. 문 대통령이 연초 신년사를 통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을 때 분위기가 예고됐다.

처음엔 정부가 누구와 싸우려고 저러나 싶었다. ‘투기와 전쟁’이라니 아리송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각종 대출규제와 세금 및 거래 규제로 무주택 실수요자가 아니면 집을 사기 어려운 상황인데, 투기가 심각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정부가 전쟁의 대상으로 삼은 건 다주택자였다. 특히 강남 등 고가주택 보유자에 대해 수시로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한 방송에 나와, “다주택자의 투자 이익을 환수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2채 이상 주택을 소유한 가구가 308만여가구 있다. 전체 가구의 15%에 해당한다. 이들은 황당했다. 자신들이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느닺없이 정부가 재산을 환수할 수 있다니 어이가 없었다.

비슷한 시기 다주택자 고위직 공무원은 적폐로 취급됐다. 아무리 합법적으로 2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하게 됐고, 내야할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고 항변해도 다주택자는 뭔가 나쁜 짓을 한 계층으로 여겨졌다.

‘갈등만 커졌다’…지금 대한민국 부동산은 전쟁중[부동산360]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국무위원식당에서 열린 제9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7·10대책은 다주택자에겐 엄청난 충격파를 던졌다. 다주택자에겐 ‘세금폭탄’, 법인투자자에겐 ‘사형선고’란 표현이 나왔다. 세금 부담이 갑자기 커지기 때문에 다주택자들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다주택자들은 ‘증여’로 대응했다. 9월에만 서울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증여 건수는 1277건으로 월간 기준 역대 가장 많았다.

정부가 다주택자와 전쟁을 하는 동안 한편에선 무주택자와 유주택자의 갈등이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 “집값은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한 이후, 각종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엔 ‘집값 하락이 정의’이며, ‘10~20% 떨어지는 건 의미 없고 반토막 나야 한다’는 주장이 거리낌 없이 올라왔다.

오른 가격에 집을 산 유주택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대상이 못됐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대놓고 ‘집값이 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문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정부엔 부동산 시장이 금융과 경제에 얼마나 밀접히 연결돼 있는지, 집값이 정말로 반토막 나면 경제가 어떻게 될지, 이해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듯하다. 대통령이 어떻게 대놓고 집값 원상회복이란 표현을 쓰는지 이해할 수 없다.” 서울 시내 한 대학에서 부동산을 가르치는 한 교수의 목소리다.

부동산 시장 안팎에선 또 다른 전쟁이 한창이다. 정부가 2개월에 한번 꼴로 쏟아낸 각종 부동산 대책으로 인해,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진지전’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먼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 갈등이 심화됐다. 지난 7월31일 임대차3법이 시행된 이후 집주인과 세입자 간 다툼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갖은 편법으로 전셋값을 올리려는 집주인과 계약갱신청구권, 임대료상한제 등을 무기로 버티는 임차인 간엔 불신이 더 커졌다.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접수된 분쟁 조정신청은 매달 급증하고 있다.

세대 갈등도 심각해졌다. 무주택자가 많은 젊은층과 유주택자가 많은 50대 이상 세대 갈등이다. 정부가 무주택자들이 많은 2030세대를 대상으로 신혼부부, 생애최초 특공 등 주택 공급을 늘리자, 오랫동안 가점을 쌓아온 40대이상 세대는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분노한다.

서울시가 젊은층을 위한 저렴한 임대주택인 ‘청년임대주택’을 짓겠다고 계획한 지역에선 집값 하락을 걱정하는 5060세대들이 거리로 나와 반대 집회를 열기도 한다.

재건축 단지도 조합원끼리, 조합원과 시공사 간 갈등이 커졌다.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재건축 단지 마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분양가 심의를 받을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을지’ 조합원 간 극심한 대립이 벌어진다.

단지별로 조합원과 시공사간의 분쟁도 예고된 상태다. 시공사들이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하지 않았을 때 약속했던 걸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일반분양 물량이 충분하지 않고, 분양가도 제대로 받지 못해 사업성은 당초 계획 때보다 더 나빠졌다. 향후 조합원 시공사간 소송전을 벌이는 재건축 단지가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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