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삼성 위기론 입 연 이재용 회장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개인적 이익 의도 없었다” 항변
검찰, 1심과 같은 징역 5년 구형
항소심 결과가 삼성 운명 좌우 전망
[헤럴드경제=김민지·정태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및 업무상 배임 등 혐의 결심 공판에서 ‘삼성 위기론’ 관련 “그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은 현실이지만, 반드시 극복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 회장은 이날 최후 진술에서 “삼성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누군가는 근본적인 위기라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어려움도 삼성은 이겨낼 것이라는 평가에 삼성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삼성이 맞이한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녹록지 않지만,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앞서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것에 대해서는 “안도감보다는 훨씬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며 “삼성과 저에게 보내 주신 애정 어린 비판과 격려를 접하면서 회사 경영에 대한 새로운 각오도 마음 속 깊이 다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검찰의 항소로 다시 재판장에서 선 상황에 대해 “다시 한번 제 자신과 회사 경영을 되돌아 보고 성찰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며 “삼성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며 많은 시간 자책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다만, 검찰이 주장한 범죄 사실에 대해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합병 추진을 보고받고 두 회사의 미래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주주들께 피해를 입힌다거나 투자자들을 속인다든가 하는 그런 의도는 결단코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날 검찰은 이 회장에게 1심과 같은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항소심 선고는 이르면 내년 1월 중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항소심 결과에 따라 이 회장의 향후 경영 행보의 폭도 달라질 전망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같은 전체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유지한다면 이 회장 경영 보폭이 빨라질 수 있지만, 원심을 뒤집는 판결이 나올 경우 삼성 경영이 급속도로 위축될 수 있다고 재계는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실적 부진, 주가 하락, 노사 갈등 등 복합적인 위기에 맞닥뜨렸다. 그럼에도 경영 전면에 나선 지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이 회장이 최근 위기설과 관련해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은 계속된 사법 리스크 영향이라고 재계는 분석하고 있다. 2022년 10월 회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이 회장만의 ‘뉴삼성’에 대한 발표가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취임 2년 연속 조용하게 지나갔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사업 역량을 증명해야 하는 혹독한 시험을 치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삼성전자 처한 어려움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을 포함한 AI 반도체 실적 부진 ▷노조의 사상 첫 파업 등 직원 불만 제기 ▷올 들어 약 30% 하락한 주가 등을 꼽았다. 여기에 트럼프 후보의 미국 대선 승리와 더딘 글로벌 경기 회복 속도 등도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이 “사업 역량(mettle)과 관련해 가장 혹독한(severe) 시험을 치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이 삼성전자 위기론과 관련해 구체적인 비전을 발표해야 할 때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아직 부당합병 의혹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사법리스크 해소 여부에 따라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와 컨트롤타워 재건 가능성도 달라질 전망이다. 현재의 삼성전자 위기 극복을 위해 이 회장이 책임경영 차원에서 보다 강한 리더십을 증명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감위) 위원장은 최근 발간한 준감위 연간 보고서에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경영 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컨트롤타워의 재건, 조직 내 원활한 소통에 방해가 되는 장막의 제거, 최고경영자의 등기임원 복귀 등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내년 초 항소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 회장은 지금처럼 신중한 경영 방식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만간 이뤄질 사장단 및 임원 인사에서는 ‘삼성전자 위기론’을 반영한 대대적인 쇄신 조치가 취해질 전망이다. 최근 반도체 부문의 실적 부진을 두고 근원적 기술력 약화, 조직 문화 혁신 등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AI 시대에 대응할 수 있도록 보다 추진력 있는 새로운 인물로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