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좋은 곳은 전세 구하기 어려워
월급 못잖은 200만~300만원 고가 월세 거래 늘어
월세 상승세 속 강북도 고가 월세 계약 이어져
[헤럴드경제=성연진 기자] 최근 전세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서울 10개구에선 전세보다 월세 매물이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새로운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이 된 지 100일이 넘었고, 가을 이사철이 지난 상황에서도 전세 매물은 적고 월세 매물은 증가세다.
지난 4일 국회에서 임대차법 여파로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이 무색한 상황이다. 김 장관은 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최근 전세 어려움에 대해선 여러 요인이 있지만 임대차 2법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비슷한 답변을 했다.
하지만 이와달리 전세 매물이 적은 곳에선 수백만원에 달하는 고가 월세 계약도 잇따라 체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은 새 규제를 비웃듯 월세를 올리고 있다.
대치동은 월세 매물이 전세보다 두 배 많아
9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 실거래가)에 따르면, 현재 전세보다 월세 매물이 더 많은 곳은 강남·구로·관악·동대문·마포·서대문·송파·용산·종로·중구 등 10개구다. 앞서 김현미 장관이 4일 국회에서 “확정일자 받은 내역을 전부 자료 분석을 해보니까 작년과 올해 전세 비율과 월세 비율에 의미 있는 변화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는데, 숫자는 그와 다르다. 김 장관의 설명을 두고 당시에도 시장에선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거래를 포함해 착시가 일어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월세 매물 증가는 전년동기가 아닌 연초와만 비교해도 확연하다. 강남구의 경우 현재 전세는 1887건, 월세는 2301건이 매물로 나와 있다. 지난 1월 6일 기준으로는 전세 5759건, 월세 5079건으로 전세가 매물이 더 많았다.
중구(전세 121건, 월세 242건), 관악구(전세 124건, 월세 235건) 등 월세 매물이 사실상 전세보다 배가량 많은 곳도 있었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잠실동과 삼성동, 대치동 등에선 전세매물이 급감하고 월세 매물이 크게 늘었다. 이들 지역에선 실거주 외 매매 거래가 막히면서 사실상 세를 낀 매물은 사지도 팔지도 못하게 됐다.
당장 대치동은 9일 현재 전세 101건, 월세 213건으로 월세 매물이 배 이상 많고, 잠실동도 전세 207건, 월세 274건으로 월세 매물이 32.4% 더 나와있다. 삼성동도 전세는 134건에 그쳤지만, 월세 매물은 배 수준인 267건이 나와있다.
강남 일대엔 흔한 월세 200~300만원, 직장인 월급 수준
월세도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 이상으로 올랐다. 강남 일대에선 84㎡(이하 전용면적) 기준 300만~400만원대 월세도 연이어 계약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일 삼성힐스테이트2단지 84㎡이 보증금 3억원, 월세 208만원에 거래됐다. 잠실동 트리지움도 10월 계약서를 쓴 84㎡ 임대차 계약 13건 가운데 5건을 제외하곤 모두 월세였고, 이 가운데 월세가 가장 큰 것은 보증금 1억원에 월세 340만원에 달했다.
잠실 엘스도 이달 5일 84㎡가 보증금 1억500만원에 월세 210만원을 주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썼고, 8학군 중심지 새 아파트인 래미안대치팰리스 94㎡는 지난달 12일 보증금 10억원, 월세 209만원 조건에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고가 월세는 전셋값 상승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일 기준 주간주택가격동향 보고서에서, 서울 강남구가 전주 대비 전셋값 상승률 0.93%로 강서구(0.96%)에 이어 서울에서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강남구에선 정부가 재건축 분양권을 2년 실 거주자로 제한하면서 집을 비우는 임대인이 증가하고 있다”며 “저금리속에 고가주택에 대한 공시가와 보유세 인상에 따른 세금부담을 월세로 메우고자 하는 임대인이 늘면서 월세는 증가하고 전세 매물은 감소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저금리 환경과 정부 규제가 복합적으로 월세 전환의 속도를 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상승 추세 이어가는 월세 가격…강북도 고가 월세 계약 잇따라
정부 통계도 이 같은 시장 상황을 담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의 10월 아파트 월세 가격은 전달 대비 0.16%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강남지역이나 대형 면적이 아니더라도 고가 월세 계약은 이어지고 있다. 구로구 신도림 디큐브시티는 지난달 105㎡가 보증금 1억원, 월세 300만원에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서대문구 북아현동 신촌 푸르지오 84㎡도 10월 말 보증금 1억원, 월세 200만원에 실거래 신고됐고, 여의도의 낡은 재건축 아파트 수정아파트 150㎡도 보증금 1억500만, 월세 210만원에 이달 6일 매물이 나갔다.
업계는 점점 이 같은 월세 계약 증가와 가격 상승이 고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입지 조건이 뛰어난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일수록 더욱 그 속도가 가파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양석영 반포동 백마공인중개사 부장은 “최근 아크로리버파크 59㎡가 보증금 1억원에 월세 480만원, 84㎡가 보증금 2억원 월세 550만원에 거래되는 등 전례없는 월세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최근 여당에서 ‘3+3’으로 임대차 6년안이 발의됐는데, 집을 6년을 묶어둔다면 전셋값은 더 오르고 월세도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yjsu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