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시장 지표서 역대급 기록 쏟아져
전셋값 급등에 매매시장도 불안해져
정부 대책은 언급했지만…묘책이 없어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신규 계약할 때 전셋값 급등은 불 보듯 뻔하다.”, “전세 소멸 시대를 더 앞당긴 꼴이다.”
전세시장을 둘러싼 우려들이 단기간 내 현실화됐다.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도입된 지난 7월 말 이후 전국의 전셋값·매맷값 상승률은 물론 전세시장 심리지수 등에서 잇달아 ‘역대급’ 기록이 나오고 있다.
올 들어 전세시장은 가뜩이나 집주인의 반전세·월세 선호와 실거주 의무 강화, 청약대기·학군·이주 수요 등으로 매물 부족 현상이 심화한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도입된 새 임대차법이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꼬인 수급을 풀어낼 묘책이 마땅치 않아, 전세난이 내년까지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이어진다.
“자고 일어나면 뛰는 전셋값”
13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27% 올라 2013년 10월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주간 상승률을 나타냈다.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8월까지 약 20개월간 마이너스 변동률을 보이다가 그해 9월부터 오르기 시작했다. 매주 0.10% 안팎에서 움직이다가 올해 8월 첫째 주 0.20% 치솟았다.
특히 서울은 72주 연속 오름세를 보인 가운데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를 중심으로 전셋값이 크게 뛰며 전체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8월 첫째 주 강남 4구 아파트 전셋값은 0.30% 올라 서울 전체 권역 중 가장 많이 올랐다. 이 권역은 다른 권역보다 매주 0.01∼0.11%포인트 높은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전셋값 상승세가 가팔라진 시점은 새 임대차법이 도입된 시기(7월31일)와 맞물린다. 부동산 업계에선 임대차 계약을 연장해 기존 주택에 2년 더 눌러 앉는 세입자가 늘면서 시장에 나올 전세 매물이 크게 줄어 전셋값이 뛸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한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새 임대차법 도입 후 신규물량에 대해선 공급자 우위 현상이 더 공고해졌다”고 평가했다.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15주간 아파트 전셋값 누적 상승률은 서울 1.42%, 수도권 2.56%, 지방 2.53% 등이다. 법 시행 직전 15주(서울 0.93%, 수도권 1.67%, 지방 1.10%)와 비교하면 최근 상승세가 가팔랐다는 게 뚜렷이 확인된다.
이렇다 보니 서울 강남권에선 기존 전세 계약을 갱신하는 경우와 같은 단지의 같은 크기를 새로 계약하는 경우, 전셋값 격차가 2배로 벌어지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는 지난달 4억2000만원, 8억3000만원에 각각 전세 계약됐다. 전셋값이 빠른 속도로 오르며 집값에 육박하거나, 매맷값을 뛰어넘는 사례도 속속 등장했다.
서울 진입 불가…외곽으로 눈 돌린다
서울에서 시작된 전세난은 수도권, 지방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도 이번 주 0.25% 오르면서 5년여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8월 첫째 주 0.22% 오른 뒤 2개월 가까이 상승폭이 축소됐지만, 지난달부터 매주 상승폭을 키웠다.
수도권에선 인천 아파트 전셋값이 2014년 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0.61% 올랐다. 송도동이 포함된 연수구는 전국 규제지역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인 1.83%를 기록했다. 서울에서 밀려난 전세 수요가 수도권으로 넘어가고 있으나, 역시 매물이 귀해 수천만원에서 1억~2억원까지 오른 값을 치러야 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게 일대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지방 역시 0.29% 올랐는데, 이는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2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전세 공급 부족 수준을 보여주는 지수도 역대 최고치에 근접했다. 한국감정원이 1~200으로 나타내는 전국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이번 주 116.6으로, 역대 최고치였던 2015년 4월 13일(116.9) 수준에 가까워졌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서울(131.1), 수도권(123.8), 지방(109.6) 등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 탓이다.
전셋값이 매맷값도 흔든다…비규제지역 ‘들썩’
전세난이 심화하면 이를 회피하려는 수요가 생기면서 중소형·중저가 주택의 매매가격이 들썩일 수 있다는 점도 애초부터 나왔던 우려다.
전세난에 지친 세입자들이 ‘집을 사버리자’는 수요로 돌아서면서 집값이 올라가는 현상도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은 이번 주 0.21% 올라 6·17 부동산 대책 직후 수준으로 올랐다.
서울 아파트값은 중저가단지가 몰린 지역의 강세를 바탕으로 0.02% 올랐다. 수도권(0.15%)에서도 비규제지역인 김포시는 아파트값이 지난주 1.94% 오른 데 이어 이번 주 1.91% 상승하면서 2주 만에 무려 4% 가까이 폭등했다. 김포와 함께 비규제지역으로 남은 파주(0.47%) 역시 매맷값 상승이 뚜렷해지고 있다. 서울 출퇴근을 고려한 실수요와 갭투자 수요가 뒤엉키면서 과열 양상을 보인 것이다.
김포시 운양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9월부터 김포에 실거주자들이 유입되고 있다”면서 “서울에서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예 집을 사자며 몰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책 언급은 했는데…내놓을 카드가 없다
전문가들은 전세시장이 왜곡되면 손을 댈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고 줄곧 지적해왔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겠다”면서도 구체적인 시기를 확정 짓지 못하는 건 묘책이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장 전세난을 타개하려면 즉각적인 공급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현재 공공기관이 공실인 주택을 매입하거나 임대해 전세로 공급하는 방안, 상가나 오피스를 주거용으로 만들어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내년에도 이어질 전세난을 잡기엔 역부족일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입주할 수 있는 실물주택이 언제 시장에 나오느냐가 관건”이라면서 “당장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 아니라면, 내년도 올해의 상황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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