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석 국가건축정책위원장 강조
“판교도 밤만 되면 유령도시”
필지 다양화해야 도시 생태계 돌아가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3기 신도시의 공통된 목표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로의 자리매김이다. 역대 정부가 1·2기 두 차례에 걸쳐 17개의 신도시를 조성했지만 자족성을 갖춘 도시로 평가받는 곳은 고작 판교 정도다. 다른 신도시들은 여전히 베드타운(퇴근 후 잠만 자는 주거지)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부는 3기 신도시 도시별로 가용면적의 20~40%를 자족용지로 확보했다. 그러나 땅만 확보한다고 자족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동탄테크노밸리 조성으로 주목받은 동탄2신도시가 개발 10년이 지나도록 빈 땅과 빈 사무실로 가득하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박인석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은 ‘필지 다양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자족용지를 만든 취지는 기업 유치, 일자리 창출과 함께 청년창업의 기회를 주자는 것인데 획지를 크게만 잘라 공급하면 모두 큰 빌딩만 들어서고 자연히 임대료가 비싸진다. 누가 거기서 창업을 할 수 있겠나. 이미 능력을 갖춘 기업만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선 안된다”고 꼬집었다.
박 위원장은 2000년대 초 벤처붐이 일었을 당시의 ‘포이밸리’를 예로 들었다. 포이밸리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인근 옛 포이동 일대에 형성됐던 우리나라 최초의 벤처타운이다. 박 위원장은 “당시 정부가 벤처창업을 지원하자 젊은 창업자들이 포이동 뒷골목으로 몰렸다. 골목골목 작은 상가에 싼 임대료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대기업 본사만 있고 백화점만 있어서 되겠어요? 저렴한 임대료를 받는 땅도 있어야 해요. 그래야 청년들이 창업도 하고 저렴한 음식점도 생기고 구멍가게도 생기죠”라고 했다. 사업자 입장에선 대형필지 공급이 가격이나 면적 확보 측면에서 효율적일지 몰라도 다양한 산업군이 공존하는 생태계 구축에는 걸림돌이라는 게 박 위원장의 생각이다.
성공사례로 꼽히는 판교에서 나타나는 공동화 현상도 문제로 보고 있다. 그는 “자족용지 내 주거기능을 넣지 못해 아파트형 공장만 잔뜩 들어섰다. 밤이면 텅 빈 유령도시가 된다. 옛날로 말하면 일종의 도심공동화”라며 자족용지에도 주거복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 위원장은 “도시를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려면 당장의 사업 효율성, 공급효과만 생각해선 안 된다”며 “작은 필지를 충분히 확보해야 다양성을 갖춘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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