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당선인 민간 재건축 규제 완화 예고
인허가권, 조례 개정으로 재건축 등 규제완화
서울에만 32만가구 공공주도 주택공급 타격
민간 혜택 늘면 공공 공급 참여 떨어질 수밖에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주도 주택공급 대책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확대방안’(이후 ‘2·4대책’)은 전국 도심에 83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인데 서울이 32만 가구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주택 공급 절차마다 인허가권을 가진 서울시의 적극적인 협조가 없으면 실현하기 어려운 계획이다.
오 후보는 기본적으로 공공 주도 주택공급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보단 각종 민간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풀어 36만가구 주택공급을 추진하겠다는 게 기본 방향이다. 아예 공약 전면에 ‘주택공급 가로막는 도시계획 규제 혁파’를 내걸고 활동했다. 주거지역 용적률 상향, 한강변 35층 높이제한 폐지 등 일률적인 높이 규제 완화, 비강남권 상업지역 확대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취임 100일 이내 법령에 없는 각종 규제를 정리하겠다는 로드맵도 발표했다.
이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SH공사가 시행사로 직접 나서 서울에 32만가구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부 구상과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서울시장은 기본적으로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 분양가상한제 등을 완화할 권한은 없지만, 각종 조례를 개정하는 방법으로 층수제한, 용적률 완화 같은 규제를 바꿀 수 있다. 오 후보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 성수동의 한 재개발 조합을 방문해 “취임 100일 내 서울시 도시계획 조례 개정으로 서울시에만 존재하는 제2종 일반주거지역 7층 이하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간 재건축·재개발 규제가 완화돼 사업성이 좋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주도 주택공급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공공주도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참여하려는 대상 단지가 줄어들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근 잇따라 발표한 공공재개발 사업지, 공공재건축 선도사업 후보지 등은 모두 아직 주민 동의를 받지 못한 후보지일 뿐이다. 정부는 공공주도 주택공급에 참여하면 층고제한 완화, 용적률 상향 등의 혜택을 준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공공주도가 아니어도 용적률이 올라가는 등 사업 여건이 개선되면 공공재건축·공공재개발에 대한 관심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서울 강남권이나 마포, 용산 등 인기지역은 공공주도 사업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히 큰 편이다. LH와 SH공사의 임대주택 이미지, 민간 시행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주거시설 수준을 우려하며, 나중에 집값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오 후보가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한다고 하면 ‘공공주도 사업 반대파’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공공주도 사업을 위한 주민동의율 기준(3분의2)을 맞추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오 후보가 직접적으로 문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주도 주택공급 추진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예컨대 2·4대책 후속 작업을 추진할 때 지자체는 후보지 접수, 설명회 주최, 주민의견 수렴 등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는 별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있다. 미온적인 업무 처리만으로 사업은 수개월씩 지연될 수 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을 때,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시장과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주택시장이 혼란을 겪었던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
당시 이명박 시장은 뉴타운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었는데, 집값을 자극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는 당시 양도소득세, 보유세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10·29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면서 급등하는 서울 집값을 잡으려고 했으나, 이 시장은 11월 바로 돈의문, 한남, 전농 답십리, 아현, 가재울 등 12곳을 ‘2차 뉴타운’으로 추가 발표했다. 이후 급등하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노 정부는 잇따라 규제책을 내놓았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서울 집값은 뉴타운 호재를 기반으로 폭등했다.
2005년 이 시장은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을 놓고 “이건 중앙정부가 아니라 군청 정도에서 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고, 당시 추병직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시장이 청계천 개발이나 시청 앞에 잔디를 까는 등 전시 행정만 열중하고 있다”고 맞받아 치는 등 노골적인 갈등 관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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