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산 미국 의료·교육선교사 우정·희생의 족적
韓호랑가시, 美알래스카호두나무,메이플 조화
정헌기,이이남,‘부산사나이’ 이한호, 예술 입혀
독립-민주화 산실 수피아, 정은경 청장 등 배출
달빛고속철,광주와 청라언덕 대구 화합 기대감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신이 예술적으로 빚어낸 무등산 주상절리를 스친 햇살이 동쪽으로부터 깃드는 광주 양림산 언덕에 오르면, 수피아여고가 탄생하게 된 우일선(Wilson) 선교사 사택이 있다.
대구 동산동 청라언덕 처럼, 미국선교사들의 피, 땀, 눈물, 헌신이 배어있는 사랑의열매 호랑가시나무 숲 기슭에 자리한다.
덕성, 숙명, 이화, 진명 등 이름을 여중고 교명으로 썼던 110년전, 수피아라고 이름 지으니, ‘숲+유토피아’의 줄임말이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사실은 설립자인 메리 스턴슨 선교사가 고국에 남겨두고 온 여동생 이름이다.
사랑과 그리움이 깃든 교명이다. 이런 식의 작명 중엔 벤츠(K.Benz)의 동업자 다임러(G.Daimler)의 충직한 부하직원네 귀여운 딸 ‘메르세데스’가 자동차 브랜드로 된 것이 대표적이다.
▶근대 투어인데, 다크투어 아닌 해피투어= 보통 ‘근대 여행’ 하면 일제시대 고난과 극복 의지가 묻어나는 ‘다크 투어리즘’인데 비해, 크리스마스 씰, 사랑의 열매 아이콘인 이곳 호랑가시나무 언덕은 한국-미국 간 우정, 의료, 교육협력이 꽃 핀 ‘해피 근대여행’ 명소이다.
최근 양림언덕의 광주와 청라언덕의 대구가 달빛고속철도로 연결돼 머지 않아 1시간생활권이 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기분이 더 좋아진다. [본보 7월6일자 ‘대구 감성여행, 청라언덕·김광석길’ 참조]
선교사들이 고향 그리워 나중에 공수해온 알래스카호두나무, 메이플의 호위 속에 호랑가시나무언덕 꼭대기의 선교사 묘지로 향한다.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어도 한국을 위해 헌신한 45명의 선교사, 850여명의 호남 순교자들을 기리는 ‘고난의 길’ 65디딤돌을 오르는 동안, 교육자 배유지(Eugene Bell),프레스톤(Preston) 의사 이철원(Dietrick), 카딩톤(Codington)박사, 나병환자를 돌보며 소록도병원 설립에 영향을 미친 포사이드(Forsythe) 등의 족적이 아로새겨져 있다. 이 65디딤돌은 청라언덕의 99계단과 조응한다.
▶정헌기 청사진, 이이남 채색, 이한호 소프트파워= 양림동 호랑가시나무언덕의 변신은 마을비엔날레를 하겠다고 나선 이 마을 주민들, 수피아 동문들, 문화예술법인체 아트주 대표 정헌기, 부산이 고향인 도시재생 디렉터 이한호가 주도했다. 그리고 ‘명작 보태기’ 그림 철학을 갖고 있는 이이남 작가는 마을의 색깔을 바꾸었다.
이달 말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하는 스페인 마드리드 축제에서 미디어아트를 선보일 이이남은 “명작에 동양미학과 생명과학을 불어넣어 ‘보태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한발짝 떨어져 미술을 다시 볼 기회를 가졌던, 거리두기, 자가격리의 산물”이라고 농반진반 했다. 마릴린 먼로 등 그의 작업실내 수많은 영감 얻기 이미지 중 자기 사진이 제일 많다.
정헌기가 마을 헌공장을 이이남 스튜디오로, 원요한(Underwood) 사택, 차고, 유수만(Nieusma) 선교사집을 각각 예술창작소, 아트폴리곤 전시관,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바꾸며 아키텍쳐 포석을 놓으면, 이이남이 색을 칠하고, 이한호가 다양한 매력발산 콘텐츠를 디자인한 뒤 알려나갔다. 이렇게 ‘광주 예루살렘’ 양림동은 호남의 몽마르뜨 언덕으로 거듭난다.
▶정객 문재인의 사색, 호랑가시 게스트하우스= 40년간 유치원으로 쓰였던 ‘10년후 그라운드’는 이한호 대표가 2030년 완성을 목표로 양림아트빌리지를 기획한 카페형 문예 벙커다. 광주에 오는 문화예술인들은 이곳 부터 찾아도 된다. 양림예술촌엔 지난 6년간 40명의 예술가가 거쳐 가거나 머무르고 있다.
호랑가시나무 게스트하우스엔 정객 시절 문재인 대통령 등이 묵으며 사색에 잠겼던 곳이다. 숱한 자목, 손자목을 거느린 400여 성상의 호랑가시나무는 117년전 유진벨이 첫 한국-미국인합동예배를 한 윌슨사택 아래에서 오늘도 이 언덕을 지킨다. 윌슨사택 사랑채에서 미국 스승-한국 여제자 3명이 수업하던 모습은 수피아여고의 첫걸음이었다.
호랑가시나무 면류관을 쓴 예수에게서 가시를 빼주던 티티새가 죽은 뒤 나무엔 그 새의 피로써 붉은 열매가 맺힌다. 그 후손나무들은 동양에서 한옥 처마끝 벽사(僻邪:사악한 것을 쫓아냄) 작대기도 되었고, 유럽에선 해리포터의 마법지팡이가 되기도 했다.
광주호랑가시나무언덕에서 기분 좋아지는 인문학, 맑은 공기를 흡입하면서, 우리나라를 건강하게 할 벽사의 마법지팡이를 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