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급감한 법인의 아파트 매수
올 3월 상승세 전환…8월엔 작년 초 수준까지
취득세 중과 예외인 저가 아파트 매수 영향
개인에 비해 법인 양도세 적다는 점도 작용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법인투자자의 아파트 매수가 다시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법인투자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율 인상 등으로 급감했던 법인의 아파트 매수물량이 지난해 초 수준까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풍부한 시중 유동성을 바탕으로 취득세 중과를 피할 수 있는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 영향 등으로 풀이된다.
9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전국에서 개인이 내놓은 아파트 매물을 법인이 사들인 물량은 1만9722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3만1887건)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지만 거래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해 6월 7602건까지 늘었던 ‘개인 매도-법인 매수’ 월간 거래량은 7월 2992건, 8월 768건으로 쪼그라든 이후 올해 초까지 1000건 안팎 수준을 유지해왔다. 그러다 이후 지난 3월 1695건으로 소폭 상승했고 6월 2711건을 거쳐 8월부터는 월 기준 3000건 이상 손바뀜이 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6·17대책과 7·10대책에서 부동산 법인투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주춤했던 법인의 부동산 매수가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올해 들어 아파트 거래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법인 매수 증가세는 더욱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최고 7.8%까지 올랐던 법인의 전국 아파트 매입 비중은 같은 해 7월 3.5%로 급감했고 연말에는 1.4%까지 떨어졌다. 이후 올해 4월까지도 2%대로 낮았지만 5월 3.4%를 기록한 이후 상승폭을 넓혔고 지난 9월에는 5.6%까지 확대됐다.
업계는 정부의 규제를 피한 법인들의 틈새 투자가 기승을 부린 것으로 보고 있다. 취득세 중과 조치에서 제외된 저가 주택으로 매수세가 몰렸다는 분석이다.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는 취득세가 1.1%에 불과하고 여러 채 보유하더라도 중과 대상이 아니다.
여기에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까다롭다 보니 비교적 규제가 덜한 법인을 세워 투자에 나선 개인이 늘어난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다. 단타 거래 시 개인의 양도세율이 70%로 뛰다 보니 최고 45%인 법인의 양도세율을 내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법인을 통한 투자에 나선 것이다. 대출 규제 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점도 법인투자 증가에 한몫했다.
실제 지역별 거래량을 살펴보면 가격대가 비교적 높은 서울, 경기, 광역시보다는 충남·충북·전북·전남 등 지방에서 법인 거래가 대폭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부동산원으로부터 제출받은 ‘법인 자금조달계획서 심층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전국에서 법인이 매입한 주택 4만6858채 중 54.7%인 2만5612채가 1억5000만원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고려할 때 실거래가 1억5000만원짜리 아파트의 공시가격은 1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정부 규제의 빈틈을 노린 법인의 이 같은 투자는 지방의 주택시장, 특히 저가 주택이 즐비한 지역 주택시장을 자극하고 있다. 법인투자자 유입에 따른 가격상승 부담 등을 지역주민이 떠안게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 초 충남 아산, 충북 청주, 경북 구미 등에서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에 대한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가 성행하면서 주택 가격이 급등한 바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종부세, 취득세 강화로 법인의 주택 매수가 어려워졌지만 최근 틈새 매수가 재개되는 분위기”라며 “특히 취득세 중과 예외 조치가 적용되고 개인에 비해 양도세 부담이 적은 충주, 청주 등지의 저가 아파트를 법인들이 대거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