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수급지수 조사 기관별 격차 극과극
부동산원 기준 99.1 vs. KB국민은행 138.3
어느 통계 믿느냐 따라 시장 판단 달라져
실제 전세매물 늘다가 다시 감소 추세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서울 아파트 전세, 내놓는 집주인이 들어갈 세입자보다 많아졌다!’
지난주 한국부동산원(이하 부동산원)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조사 결과가 나오자 일제히 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쏟아졌다. 이달 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가 99.1을 기록해 2019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100 이하로 내려갔다는 내용이다.
이 지수는 부동산원이 선정한 중개업소를 상대로 조사해 작성한다. 0~200 범위에서 100을 기준으로 공급이 많다는 답변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 100 밑으로 떨어진다.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2019년 10월 네번째주 100.3을 기록한 이후 110주 연속 100 이상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주 100 밑으로 떨어지면서 마침내 전세 공급이 수요 보다 많아지는 ‘역전현상’이 나타났다는 게 부동산원 조사 결과다.
전세수급지수가 중요한 건 향후 전셋값 향방을 예측할 가장 중요한 지표여서다. 전세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지면 전셋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똑같은 방식으로 KB국민은행이 조사한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시장을 완전히 다르게 보여준다. KB국민은행이 회원 중개업소를 통해 조사한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이달 6일 기준 138.3으로 여전히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다. 2019년 3월 두번째주 102.9를 기록하면서 100 위로 올라선 이후 156주 동안 내내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수요우위’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 전세시장 상황을 부동산원과 완전히 다르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경기도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부동산원 전세수급지수는 99.8인데, KB국민은행 기준으로는 128.7이다.
수도권(서울·경기·인천 포함)이나 전국 기준으로도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다. 수도권 전세수급지수는 부동산원 기준으론 100인데 KB국민은행 조사결과로는 135.8이다. 전국 전세수급지수는 부동산원에선 101.4로 나오지만 KB국민은행이 조사한 건 142.8이다.
부동산원 조사로는 수도권이나 전국 모두 전세 공급이 수요를 앞서기 시작했거나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KB국민은행이 작성한 지표로는 전 지역에서 전세 공급이 수요에 비해 한참 모자란다.
해당 기관에선 중개업소 표본 선정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통계를 이용하는 국민들 입장에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표본에 따라 조사결과가 조금씩 다를 순 있지만 이건 같은 시장에 대한 조사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부동산원 조사결과는 정부 공식 통계로 정책 결정의 근거가 된다. KB국민은행 조사는 대출 근거 등 국민들의 삶과 밀접한 가장 오래된 시장 통계다. 공신력 있는 두 기관의 전세 시장 판단이 이렇게 차이가 큰데 도대체 어디를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처럼 부동산원 통계를 근거로 삼는 사람은 ‘시장이 안정됐다’, ‘전셋값이 곧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할 것이고, KB국민은행 통계를 보는 사람은 전세시장이 곧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고 예상할 것이다. 어느쪽이 더 객관적일까.
실시간으로 온라인상 중개업소 매물(중복으로 올릴 경우 1건으로 집계)을 집계하는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11월 중순까지 전세 물건이 조금씩 늘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엔 다시 감소한다. 이달 13일 기준 11월말(15일 전)과 비교해 서울 25개 주 가운데 전세 매물이 증가한 지역은 9곳이고, 16곳은 전세 물건이 감소했다.
일간 기준 13일 서울 아파트 전세매물은 3만964채로 전일(3만1502채) 보다 500여채 줄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하루 평균 3만채 전후를 기록하는데, 이달 8일 3만1301채로 늘면서 3만1000채 이상까지 올라갔다가 지난 주말을 거치면서 다시 3만채대로 내려왔다.
경기도도 비슷하다. 13일 3만257채로 전일(3만744채) 보다 500채 가까이 줄었다. 경기도 아파트 전세 매물 역시 일간 기준 3만채 전후를 기록한다.
전문가들은 지금 전세시장은 지난해 7월 계약갱신청구원 등 임대차3법 통과 이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같은 단지 같은 크기 전세인데 신규계약과 기존 재계약의 가격차이가 수억원씩 벌어지고, 반전세나 월세 전환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세입자나 집주인 모두 거래에 적극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거래는 역대급으로 줄었는데 한쪽에선 기존 보다 한참 더 많이 오른 계약건이 수시로 튀어나오고, 반대로 집주인 사정에 따라 급매로 거래되는 사례도 나타난다.
어떤 표본을 정해 어떤 시점에 조사를 하느냐에 따라 시장 판단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쪽 입장, 한쪽 통계자료만 보고 시장 판단을 하면 어느 때보다 낭패를 보기 쉬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