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익스와프(TRS) 등 대기업의 금융상품 기반 투자에 제동을 걸면서 기업들의 차입 활용 사업 확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SK가 LG실트론 인수 당시 동원됐던 수단이 사실상 막힐 가능성이 커져 기업들의 신사업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공정위는 최근 2022년 업무추진계획을 통해 총수익스와프(TRS), 자금보충약정 등 채무보증과 유사한 효과를 갖지만 현행법으로 규율되지 않는 금융상품 이용 현황에 대해 대기업 대상으로 실태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인 셈이다. 공정위도 “대기업집단의 편법적 지배력 방지를 위해 계열사 간 채무보증과 유사 효과를 가진 금융상품 활용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자금보충약정은 채무자의 여신상환능력이 감소하는 경우 제 3자가 출자 또는 대출의 방식으로 채무자의 자금을 보충해주는 약정으로 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 쓰인다. 이는 제 3자가 채무자의 여신을 직접 대신 갚아주는 일반 채무보증과 차이가 있다.
TRS(Total Return Swap)는 금융기관 등 투자자가 매도 기업의 지분을 대신 매입해준 뒤 이 기업의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매수 기업과 체결하는 계약을 가리킨다. 매수자는 당장 큰 돈을 들이지 않고 기업 지분을 인수할 수 있는 반면 고정 수수료를 투자자에 지급해야 하며, 계약기간 중 자산 가치 변동에 따른 평가액 손실도 떠안아야 하는 부담도 있다.
최근 논란이 된 2017년 SK와 최태원 회장의 SK실트론(당시 LG실트론) 지분인수 당시에도 TRS가 동원됐다. 당시 SK는 경영권 확보 차원에서 실트론의 51% 지분을 매입한 뒤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 충족을 위해 19.6%의 지분을 추가 취득하는 과정에서 TRS를 사용했다. 최 회장 역시 기술의 해외유출 방지, 책임경영 의지피력 등의 차원에서 TRS로 나머지 29.4%의 지분을 인수했는데, 이를 공정위는 SK가 공정거래법상 금지돼 있는 사업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SK와 최 회장에 과징금 처분을 내린 것이다.
공정위가 새해 들어 채무보증 유사 상품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선 것도 실트론 조사 과정에서 TRS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한층 더 갖게 됐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재 공정거래법(제10조의2)은 대기업이 계열사에 대해 행하는 채무보증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계열사간 상호 채무보증이 연쇄도산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이 있으며, 대기업 구조조정의 장애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합리화, 해외직접투자 등 국제경쟁력 강화와 관련된 채무보증의 경우 제한제외대상으로 예외 허용하고 있다.
작년 5월 현재 국내 40대 기업의 채무보증금액은 1조1588억원으로 이중 1조901억원이 제한대상이고, 나머지 687억원이 제한제외다. 주요 그룹을 보면 SK가 36억원 규모의 제한제외 채무보증이 있고, GS와 두산도 각각 360억원, 12억원의 제한제외 채무보증이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