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권력·섹스등 10가지 키워드 제시 인간의 감정·탐욕의 역학적 관계 역설
부르즈할리파·글라스하우스 등 건축 스캔들·가십 흥미진진
냉소적이면서도 기품있게 분할·융합하는 건축세계로의 초대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가 래리 딘은 수돗물조차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자랐지만, 가난을 극복하고 엄청난 부를 쌓아 억만장자가 됐다.어린 시절의 한을 풀 듯 그는 1992년 미국 애틀랜타에 조지아 주에서 가장 큰 집을 지었다. 면적은 3000㎡, 건축비는 2500만달러(약280억원), 연간 유지비만 150만달러(16억원)에 이르렀다. ‘딘 가든스’로 명명된 이 건물에는 피렌체 성당에서 영감을 얻은 3층 반 높이의 로툰다(바닥이 원형이고 돔지붕을 얹은 건물이나 방)와 조개껍질 형태의 수영장, 영국산 석회암으로 조각한 테이블 및 유명화가가 그린 벽화로 장식된 13m높이의 천장, 그랜드피아노와 카푸치노 바를 갖춘 피코크 룸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주인인 래리 딘과 부인 린다의 결혼생활은 집이 완공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파탄났고, 딘 가든스는 이혼 이듬해인 1994년에 매물로 처음 나왔다. 이 집은 무려 16년간이나 팔리지 않다가 프로듀서이자 배우인 타일러 페리에게 건축비와 유지비용에 한참 못 미치는 760만달러에 안겨졌다.
19세기말 놀라운 성공을 거둔 미국 건축가 스탠퍼드 화이트는 뉴욕에 굉장한 궁전을 하나 설계했는데,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스페인-무어 양식 타워다. 여기에 있던 그의 아파트는 구하기 힘든 암갈색, 적갈색, 주홍색, 크롬 황색으로 칠해졌으며, 각종 태피스트리와 동물 가족, 각종 그림, 일본에서 가져온 물고기, 누드 동상이 갖추고 있었다. 그는 거의 벌거벗은 여인이접대하는 큰 파티를 벌이기도 했는데, 성욕과 정복욕으로 넘쳤던 그는 열 여섯 살의 한 소녀를 유혹 혹은 강간했던 일로 인해 후일 소녀의 남편이 된 남자의 총에 죽었다. 살해 현장 역시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옥상 레스토랑이었다.
‘옵저버’ ‘가디언’ 등의 칼럼과 기사로 유명한 건축평론가 로완 무어의 저서 ‘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는 건축에 대한 탁월한 미학적ㆍ인문학적 통찰과 근ㆍ현대 건축사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지식, 부와 권력이 어지럽게 얽힌 건축업계 난맥상에 대한 정보가 빼어나게 결합된 책이다.
여기에 근현대 세계 건축사 이면의 흥스캔들과 가십이 흥미진진하게 엮여 있다. 두바이의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로부터 프랑스의 퐁피두 센터, 상파울루 미술관, 9ㆍ11 테러 전후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까지, 거부의 초호화 저택에서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침실을 거쳐 일본의 러브호텔과 포르투갈의 공동빨래터까지 이르는 ‘쾌도난마’의 지적 여정은 문외한인 독자라도 단번에 건축의 세계로 빨아들인다. 저자는 신랄하고 냉소적인 어조를 숨기지 않고, 진지하고 기품있는 비평 속에 녹여 냈다.
저자는 10가지 키워드로 건축을 읽어낸다. 돈, 가정, 상징, 섹스, 권력, 과시, 희망, 아름다움, 생활, 일상이 그것이다.
그는 먼저 두바이로 상징되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건축은 순수한 이성과 기능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욕망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며, 아울러 그 반대로 감정과 욕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며 “두바이의 건축은 셰이크(두바이 왕, UAE 부통령)의 권력에 대한, 영광을 위한, 최고를 향한 야망에 의해 생겨났고, 이어 다른 사람들의 돈, 사치, 흥분에 대한 욕망을 끌어들였다”고 말한다. 요컨대 건축은 만드는 사람의 욕망에서 시작되고, 사용하고 체험하는 사람들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며, 사용자들의 욕망은 다시 건물을 바꾸고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바이의 건물들과 이탈리아 태생의 브라질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의 상파울로 집 ‘글라스 하우스’와 대조한다. 셰이크의 두바이가 욕망의 첨탑이고 권력의 드러냄이며 자연에 대한 지배력의 과시이고, 변화에 대한 불멸과 영원성의 우위를 상징한다면 리나 보 바르디의 글라스 하우스는 장소, 물질, 사람, 성장, 날씨, 우연, 시간의 흐름에 열린 공간이다.
이분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식의 대조는 책 전반을 관통한다. 래리 딘, 존 손 뿐 아니라 가정사에 문제가 많았던 여러 건축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집의 전도사’로 입지를 굳혔다.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 코르뷔지에는 결혼생활에 실패했거나 가정을 버렸거나 가정사에 문제가 많았다. 그들은 전설적인 ‘단독주택’을 남겼다. 그러나 이들 ‘집’은 추상화되고 물질화되고 예술작품이 됨으로써 생명을 잃었다. 반면 노팅힐을 비롯한 웨스트엔드 지역의 집들은 빅토리아 시대 하인들이 딸린 부유한 대가족의 집으로 설계됐지만 때로 연립주택으로 분할되기도 하고, 빈민을 위한 공동주택이 되기도 하고, 이민자와 보헤미안 학생들의 숙소가 되기도 했으며 일부는 유럽 최고 부촌이 됐다. 쪼개졌다 합쳐지고를 거듭하면서 공간은 변화하고 진화하며 생명을 이어갔다.
섹스, 가정, 권력, 과시, 상징은 ‘욕망’이다. 그리고 최후의 욕망은 ‘불멸’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불멸과 희망으로서 건물의 형태를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늘 돈이다. ‘라디오길’이라는 전통적인 거리를 뭉개고 뉴욕의 맥을 끊어놓았으나 후일 이 도시의 대명사가 된 월드 트레이드 센터. 그리고 9ㆍ11 후 오로지 미국의 명예와 아랍세계에 대한 복수심으로 서두른 그라운드 제로 및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재건 프로젝트는 그 증명이다. 미국민들의 다양한 요구, 그리고 권력과 기업들의 이해 때문에 서둘러 진행된 월드 트레이드 센터 재건 프로젝트는 디자인이 거듭 바뀌다, 결국은 테러 전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입대 계약을 맺었던 한 회사 때문에 계획이 완전이 수정됐다.
이로 인해 그라운드 제로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미국의 과잉된 명예심, 민간 기업들의 브랜드가 어울린 기괴한 모양새의 청사진을 갖게 됐으며, 결국은 거대한 공적 자금으로 민간 회사의 사무실 건축비용을 대는 상황을 맞았다.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