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개인의 결함보다 사회적 문제
중독물질 범람· 디지털화가 접근성 높여
쾌락 클수록 중독적, 금세 고통으로 기울어
약물의존 대신 현실 마주해야 균형감 회복
#데이비드는 대학2학년 때 주의력결핍장애와 범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면온몸이 땀범벅이 되고 생각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남들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 수업은 피했다. 의사의 권고에 따라 주의력결핍장애를 치료하는 애더럴이라는 각성제를 처방 받았다. 집중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자 매일 밤낮으로 먹기 시작했다. 애더럴 없이는 공부를 못할 지경이 됐다. 이후 다른 약물을 추가했다. 그러던 중 자살충동을 느꼈다.
#18살 케빈은 언제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한다. 학교도 일도 가고 싶으면 가고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 침대에 계속 있든, 비디오 게임을 하든 마음대로다. 코카인 좀 들이키고 싶으면 딜러를 통해 구입한다. 부모는 케빈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는데, 이유는 아들한테 스트레스를 줄까 봐, 혹은 정신적 외상을 줄까 봐 두려워서였다.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이자 중독치료센터를 이끄는 정신과 의사인 애나 렘키는 ‘도파민네이션’(흐름출판)에서 데이비드와 케빈 같은 환자의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한다.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 성인 25% 이상, 미국 어린이 5% 이상이 매일 정신 치료제를 먹는다. 팩실, 프로작, 셀렉사 같은 항우울제의 경우 미국인 10% 이상이 복용한다. 아이슬란드 10.6%, 호주 8.9%, 캐나다 8.6%, 덴마크 8.5%, 스웨덴 7.9%, 포르투갈 7.9%로 다른 선진국도 일상이 되고 있다.
불안과 우울증, 약물 중독을 흔히 개인의 의지박약이나 도덕적 결함으로 보지만 저자는 이를 사회문제로 인식한다. 약물과 술, 도박, 쇼핑, 게임, 채팅, 음란물 등 보상과 쾌락을 자극하는 중독성 물질의 범람과 소비를 가속화하는 자본주의, 디지털이 결합된 현대 사회의 구조적 측면이라는 것이다. 중독성 물질과 대상은 과거보다 폭발적으로 늘고 접근은 쉽고, 효능은 강해졌다. 의사들은 고통을 줄여주는 기분 좋게 만드는 알약을 대량 처방하는 추세다.
생활이 윤택해지고 풍요로운 사회에서 우울과 불안이 크게 늘어나는 건 아이러니로 보일 수 있다.
저자는 우선 쾌락의 호르몬인 도파민의 실체를 통해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해나간다. 모든 중독성 약물은 뇌의 보상 경로에서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 도파민을 더 많이 빨리 분비하는 약물일수록 중독성이 더 크다.
상자 속 쥐를 대상으로 할 경우, 초콜릿은 뇌의 기본 도파민 생산량을 55% 늘리고 니코틴은 150%, 코카인은 225%, 암페타민은 1000% 늘린다.
문제는 쾌락과 고통이 쌍둥이라는 사실이다.
쾌락과 고통은 저울의 서로 맞은편에 놓인 추처럼 작동한다. 그런데 저울은 항상 수평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자동적·반사적이다. 쾌락 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은 반작용으로 수평이 된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쾌락으로 얻은 만큼의 무게가 반대쪽으로 실려 저울이 고통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고통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특히 어떤 쾌락 자극에 동일하게 반복 노출되면 초기의 쾌락 편향은 갈수록 약해지고 짧아진다. 반면 이후 반응, 즉 고통 쪽으로 나타나는 반응은 갈수록 강하고 길어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마약, 알코올, 포르노 등 어떤 강력한 자극을 주어도 뇌는 더 이상 쾌락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반대로 저울의 고통 쪽에 너무 많이 너무 오래 기댄 사람들 역시 오랫동안 도파민 부족 상태에 시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중독에서 벗어나 삶의 균형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우선 기존의 약물 중심 치료법부터 바꾸고 고통과 마주하라고 말한다.
그가 제안하는 중독탈출법은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중독의 악영향을 찾아 열거하고 한 달간 참기를 시도한다. 뇌의 보상 경로를 재구성하는데 최소 한 달이 걸리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챙김을 통해 나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는 게 필요하다. 저자는 관찰자 위치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뇌와 우리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려 애쓰지 말고 인내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연장선에서 저자는 요즘 아이를 과보호하고 자존감과 칭찬을 남발하는 양육 및 교육환경에 의문을 제기한다.
완충재로 둘러싸인 방에서 자란 아이가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 칭찬만 받아 자존감을 높인 탓에 참을성은 떨어지고 자신의 성격적 결함에 무지하게 된 건 아닌지 돌아본다.
책에는 중독자들의 생생한 사례들이 들어있다. 관음증에 빠진 실리콘밸리의 과학자, 13년 간 수십 종의 약물을 전전한 대학생, 음식 중독으로 시작해 음모론에 빠진 여성, 인스타그램 때문에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한국인 유학생까지 다양한 중독자들의 사례가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길을 보여준다.
우울증과 에로티즘 소설에 빠졌던 저자 자신의 이야기도 담았다.
저자는 중독의 대상을 폭넓게 정의하는데, 누구도 도파민사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과용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쾌락과 고통의 저울이 작동하는 방식을 알면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도파민네이션/애나 렘키 지음, 김두완 옮김/흐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