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행거리 획기적 개선·화재 위험 낮춰 ‘게임 체인저’
전고체 등에 2조엔 투입…배터리 생산능력 20배로
혼다 2024년 전고체 시험라인 가동·토요타 특허 1위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한국과 중국에 밀려 글로벌 배터리 시장 3위로 주저앉은 일본이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산업 재건에 나선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차세대 먹거리로 삼은 ‘전고체 배터리’ 시장 공략에 집중한다. 전고체 배터리는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리면서 화재 위험은 줄여 향후 배터리 시장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탄소 중립 개발을 위해 조성한 2조엔(한화 약 19조원) 기금 가운데 1510억엔을 차세대 배터리·모터 개발에 투입할 계획이다.
특히 배터리 에너지 밀도를 현재의 2배 이상으로 끌어올린 전고체 배터리 및 재료를 비롯해 배터리 재활용 기술, 모터의 고효율화 등에 집중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일본 정부는 2030년 안전성이 뛰어난 전고체 전지의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배터리 생산을 2030년 600GWh(국내 150GWh·해외 450GWh)까지 확대, 2020년의 20배로 늘리기 위해 기업 지원을 확대한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투자 확대를 계획하는 것은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2015년 일본은 40%의 점유율로 세계 1위를 차지했으며, 중국(32%)과 한국(19%)이 2∼3위였다. 그러나 2020년 중국(37%)과 한국(36%)이 1∼2위로 올라선 반면, 일본은 3위(21%)로 떨어졌다.
일본 기업들 역시 차세대 시장 선점을 위해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서 이온을 전달해 전류를 흐르게 하는 물질인 ‘전해질’을 기존 전지처럼 액체가 아니라 고체로 바꾼 것이다.
두각을 보이는 기업은 혼다와 닛산, 토요타 등이다. 혼다는 최근 약 430억엔을 투자해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건설, 2024년 봄에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생산된 배터리는 2025년 이후 출시할 전기차에 탑재된다.
닛산은 2024년 전고체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2028년에 이를 탑재한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토요타는 지난해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시제품 차량을 공개하기도 했다. 특히 토요타는 전 세계에서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해 일본의 추격을 따돌린다는 전략이다. 토요타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관련 특허를 많이 확보한 삼성SDI가 가장 공격적이다.
삼성SDI는 지난달 경기 수원에 있는 연구소 내에 약 6500㎡ 규모로 전고체 파일럿 라인(S라인)을 착공했다. 전고체 배터리 제조를 위한 전용 설비로 라인을 구성하고, 상용화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2027년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양산이 목표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 성분에 따라 고분자계·황화물계 등으로 구분된다. 고분자계는 생산은 비교적 쉽지만 이온 전도가 낮고, 황화물계는 이온전도와 안전성이 높지만, 수분에 취약해 개발·생산이 어렵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6년 고분자계를, 2030년 황화물계를 각각 상용화한다는 목표다. SK온은 미국 솔리드파워와 함께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또 이 분야의 석학으로 꼽히는 이승우 조지아공대 교수와도 협업 중이다.
한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전고체 배터리 수요가 2025년부터 본격화돼 2030년 160.1GWh까지 늘어날 것으로 봤다. 이는 2022년 2.1GWh의 80배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