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시장 지각변동
2년 전 전세보증금 7억5000만원
1억원 낮춘 6억5000만원에 갱신계약 체결
보증금 하향 등 임대료 30% 넘게 낮추기도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가을이사철에 접어들었지만 매매시장은 물론 전월세시장도 침체 분위기가 역력하다. 전월세물건이 늘어난 데 비해 신규 수요가 줄어든 영향으로 풀이된다. 전세 가격을 낮추고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집주인이 늘면서 ‘역전세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임대보증금을 오히려 낮추는 갱신계약 사례도 목격되고 있다.
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 돈암동 한신아파트 전용면적 132.96㎡는 지난 7월 전세보증금 6억5000만원에 갱신계약이 체결됐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이 거래는 계약기간을 1년으로 뒀는데 특이한 점은 2년 전인 2020년 10월 체결된 종전 계약보다 보증금이 1억원 낮다는 것이다. 해당 아파트의 최근 전세 시세는 6억5000만~7억5000만원 선에 형성돼 있다. 대부분 가격 조정이 가능하다고 밝힐 정도로 뚜렷한 세입자 우위의 시장 분위기가 보증금 하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강서구 마곡동 마곡엠밸리 14단지 전용 84.88㎡는 지난 7월 보증금 2억원, 월 임대료 70만원에 갱신 임대차계약서를 썼다. 종전 계약이 보증금 4억원에 월 임대료가 65만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환산보증금을 기준으로 약 5억7000만원에서 약 3억9000만원으로, 임대료를 32.6% 낮춘 셈이다. 환산보증금은 8월 한국은행 기준금리(2.25%)와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월차임 전환 시 산정률(2%)을 적용해 계산했다.
일선 중개 현장에선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다 보니 기존 세입자에게 임대료 부담을 낮춰주는 조건으로 연장 계약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한다.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등의 영향으로 세입자 이동이 줄면서 전월세물건이 적체되다 보니 임차인이 ‘귀한 몸’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전세를 끼고 집을 산 갭투자자의 경우 추가 목돈 마련이 어려워 전세를 계속 받아야 하는데 세입자가 월세를 선호하다 보니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일어날 조짐도 감지된다.
실제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전날 기준 서울의 아파트 전월세물건은 5만6452건으로, 한 달 전(5만1276건)보다 10.1% 증가했다. 7월 초 4만5732건과 비교하면 23.4% 많은 수치다. 전월세물건이 쌓이면서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도 한국부동산원 집계 기준 올해 1월 0.01% 상승을 끝으로 하락 전환한 뒤 7월까지 6개월간 0.64% 하락했다.
양천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세물건이 꽤 나와 있지만 부동산경기가 침체되다 보니 움직임이 없어 거래는 잘 되지 않는다”며 “인테리어 상태가 좋은 물건 위주로 기존 실거래가에서 내린 가격으로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가을이사철이 본격화하는 추석 연휴 이후 일부 전세 수요가 움직일 수 있지만 추가 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는 만큼 연말까지 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에 지난 2년간 이어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매수 행렬로 전세가가 매매가를 지탱하고 있는 구조가 형성돼 있는 만큼 매매 가격에도 하방 압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금리 인상 여파로 월세 수요가 늘고 거래절벽에 급매로 나왔던 물건 일부가 전세시장으로 유입되며 물량 압박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며 “가을이사철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이사 수요가 전처럼 많이 늘어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