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가 연기한 실존인물 K씨 3차례 만나
강한 생존력 지닌 강인구라는 캐릭터 탄생
너무 영화같은 실화에 오히려 뺀 부분 많아
수리남 정부 제작사 항의에 노코멘트
픽션이지만 실화에 바탕, 국가명 그대로 써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넷플릭스 오리지널 ‘수리남’의 흥행 성적이 좋다. 사흘 만에 세계 8위에 올랐고, 14일에는 3위로 올라섰다. 할리우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도 리뷰를 올렸다.
‘수리남’은 수리남을 장악한 무소불위의 마약 대부로 인해 누명을 쓴 한 소시민 강인구(하정우)가 국정원의 비밀 임무를 수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흥행은 잘 되고 있지만 수리남 정부가 자국을 마약 국가로 표현했다며 제작사에 법적 대응할 태세다.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윤종빈(43) 감독은 “이 문제는 노코멘트다. 제작사에 문의해달라”고 했다. 이어 “제목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수리남 외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픽션이지만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어 가상국가로 설정할 필요성을 못느꼈다”고 설명했다.
윤종빈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등 전작들에서 알 수 있듯이 취재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리남에서 마약밀매조직을 운영했던 조봉행과 그를 잡기위해 국정원 작전에 투입된 K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실존인물 K씨를 3차례 만났는데, 평범한 민간인이 3년동안 국정원 작전에 투입되는게 납득이 잘 안됐다. 몰론 돈을 받기는 했지만.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들으며 강한 생존력, 고생, 강한 영혼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어 이를 전사(前史)에 녹여내며 강인구(하정우)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윤 감독은 마약의 유래, 코카인의 역사부터 공부하고 마약단속반(DAE)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조사했다. 그래야 가짜 얘기를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마약물들을 안봤다. 일반인이 언더커버로, 악당이 마약상이다. 시리즈물로 만들면서 힘을 빼고 찍자고 했다. 보다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톤 앤 매너로 갔다.”
윤 감독은 수리남 감옥에 갇히고도 오로지 한국에 있는 가족의 생계만 생각하는 K-가장의 모습을 담아 콜롬비아와 멕시코 마약 카르텔 이야기를 담은 ‘마르코스’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한국적인 것을 녹여내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주인공이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가족밖에 모른 채 평생을 살아왔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동생들 시집 장가를 책임진 가장이었다. 홍어사업도 실화다. 다만 그의 아버지도 홍어를 좋아하는 건 각색이다. 홍어는 가난한 아버지의 상징으로 대물림된다. 아버지가 베트남전 참전한 것도 가짜다.”
윤 감독은 “K씨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디까지가 진짜고, 가짜인지 헷갈렸다. 머리를 스킨헤드족처럼 빡빡 밀고 차이나타운 갱들과 싸웠다고 했다. 이거야 말로 ‘무간도’이고 ‘디파티드’가 아닌가. 너무 영화적이고 클리셰여서 빼낸 부분도 많다”고 전했다.
하정우가 지나치게 용감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무슨 깡으로 이렇게 했는지 나도 궁금했다. 일반인이 아니다. 그래서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전사를 많이 넣었다. 남다른 생존능력, 강인한 정신력, 깡패에게 두들겨맞고, 목에 총이 들어와도 협상하는 사람이다. 전사가 늘어진다는 평이 나와도 시리즈라서 납득시키고 넘어가는 게 중요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수리남’의 최초 기획자는 하정우다. 하정우와 같은 대학의 같은 과 1년 후배인 윤종빈 감독은 하정우와 ‘용서받지 못한 자’ ‘군도’ ‘범죄와의 전쟁’ 등 많은 작품을 함께 했다. 8년전 ‘수리남’ 시놉시스가 영화사를 돌아다니는 걸 발견한 하정우가 윤 감독에게 전달했지만, 이제야 드라마 6부작으로 공개됐다.
“나는 영화로 기획한 적은 없었다. 시리즈물로 제안했는데, 8부작을 쓰니 Tvn에서 최소 10부작은 써야 한다기에 여의치 않아 넷플릭스로 갔다.”
아무리 흥미로운 이야기도 영화는 촬영되어야 한다. 먼 나라 로케이션에 코로나. 촬영에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리허설 할 시간도 없이 일정이 빠듯했다. 윤 감독은 수리남에 간 적이 없다. 수리남과 가까운 도미니카 공화국에다 마약왕국을 만들었고, 제주, 전주, 부산, 무주 등 국내에서 대부분을 찍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실제 대통령궁에서 촬영했는데, 그 곳이 ‘대부2’의 알 파치노가 앉아있는 장소다. 해질녘에 드론을 띄워 찍으려 하자 대통령이 귀가한다고 촬영을 중단하라고 했다. 우리가 지금 찍어야 해 한바퀴 돌고 돌아오라고 했더니 양해를 해주더라. 그 정도로 협조가 잘됐다.”
윤 감독은 “강인구와 전요환 목사(황정민)는 서로 완전히 다르지만 돈과 야구라는 동질감이 있었다”면서 “다만 인구에게는 함께 사업하다 죽은 친구에 대한 애정이 더해졌다”고 설명했다. 사이비 목사 설정이 과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원래 한인회장도 생각해봤는데, 극적이지 않았다”고 했다.
윤 감독 영화에는 아버지의 비리가 많이 나온다는 지적에는 “가족이 그런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나쁜 아버지가 되는 거고, ‘수리남’은 가족때문에 아버지가 선을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대학생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연민도 있고, 결혼을 일찍 해 빨리 아빠가 되고싶었다. 아빠와의 추억이 없다 보니까. 그런 것이 작품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는 나 스스로도 생각해봐야 한다.”
마약을 “아시아 영혼을 깨워줄~”이라고 말하는 전요환의 대사가 너무 현란하다고 하자 “코카인은 고산병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 어린이 노동자가 피곤함을 덜 느끼게 하려고 박카스에 넣어 먹이기도 했다고 한다. 콜라에도 넣었다. 그래서 코크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거의 마약전문가가 된 듯한 윤 감독은 “글로벌 반응을 실감한다. 플랫폼의 힘이 대단하다. 작품이 나간 후 가장 많은 연락을 많았다. 제 자동차보험 담당자, 해외 파견간 동창들도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여자 서사가 항산 빈곤하다”는 말에는 “제 영화는 남자들이 좋아하고 여자 성향은 아니다. 공작에도 국정원 실장을 여자로 넣었는데, 말이 안됐다. 수리남에도 국정원 팀장을 여성으로 해볼까 하다 말았다. 다음 작품에서 또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윤 감독은 “나는 미니멀, 장르 색깔 덜할 걸 좋아한다. 이런 건 더 이상 극장에서 원하지 않는듯하다. 스펙타클하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면서 “수리남도 누아르, 언더커버 등 상업적 코드가 있다. 판타지와 SF 등 완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다”고 밝혔다. 수리남 시즌2에 대한 질문에는 “닫힌 결말이다. 시즌2를 생각안해봤다. 시즌1이 4년 걸렸는데 시즌2를 찍으면 8년간 바치는 거다”고 답했다.
서병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