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침체에 ‘입주 포기’ 현상 심화
대출 이자 오르자 매매·전월세 모두 “실종”
신축 아파트 입주율 하락…호가는 더 내려가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지난달까지 입주를 진행한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반포르엘을 소유한 신모(43) 씨는 이전에 살던 전세 아파트 탓에 입주를 포기하고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입주에 맞춰 동작구에서 전세를 살고 있었는데, 계약 기간을 넘겼음에도 집주인이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전세 계약이 만료됐지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2개월 넘게 이어지면서 신 씨는 결국 신축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놔야 했다. 신 씨는 “그나마 동네에서 신축 아파트이기 때문에 전세 계약이 될 것이라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라며 “전세 계약이 어긋나면서 추가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 등 피해가 막심한데, 정작 내 집에는 못 들어가게 됐고, 전세 역시 시세보다 싸게 계약해야 했다”라고 했다.
극심한 부동산 경기 침체에 고금리 영향이 겹치면서 입주가 진행 중인 신축 아파트 주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가 팔리지 않는 경우에 더해 전세 시장이 얼어붙어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까지 늘면서 어렵게 얻은 신축 아파트 입주를 포기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실제로 신 씨가 보유한 반포르엘의 경우, 입주 대신 전세를 내놓기로 한 주민들이 늘면서 전월세 물건이 쌓이고 있다. 잠원동의 한 공인 대표는 “물건이 쌓이면서 전용 84㎡의 전세 가격이 14억원까지 떨어졌다. 같은 크기의 아파트 매매 호가가 35억원 정도에 형성된 것과 비교하면 전세가율이 40% 이하로 설정된 것”이라며 “아무리 전세 물량이 많은 신축 아파트라 하더라도 가격이 많이 떨어진 편”이라고 설명했다.
인근의 도시형 생활주택인 더샵 반포 리버파크의 경우에는 지난 7월 준공 이후 140가구 가운데 30여 가구만 입주한 상태다.지난해 분양 당시에는 분양가가 최대 18억에 달했지만 ‘완판’에 성공했는데, 부동산 경기가 역전되며 잔금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기존 집을 보유 중인 경우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경기 김포시 장기동에 아파트를 보유 중인 김모(36·여) 씨는 결혼에 맞춰 배우자가 보유한 서울 영등포구의 신축 아파트로 이사 갈 예정이었지만, 기존 보유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결혼 전 일시적 2주택을 활용해 부동산 투자를 하고자 대출을 받아 신도시 아파트를 매매했는데, 그사이 부동산 경기가 하락하며 거래가 끊겼기 때문이다.
김 씨는 “6억원대에 산 아파트가 현재 4억원에도 팔리지 않는데, 누가 산다고 해도 4억원에 팔 수도 없는 상황으로, 맞벌이로 번 돈 대부분이 대출 이자로 나가고 있다”라며 “잔금 탓에 억지로 가족 대출까지 받아 버티고 있는데 손해가 크다. 아파트 매매를 후회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이른바 ‘입주 포기’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입주율은 지난 9월 기준 86.5%로 전월(89.1%) 대비 2.6%p 하락했다. 아파트 10가구 중 한 곳은 입주가 안 되는 셈이다. 미입주 원인으로는 기존 주택 매각 지연이 36.4%로 가장 높았고, 세입자 미확보(34.1%)와 잔금대출 미확보(25%)가 이유로 나타났다.
연구원은 “단기간 내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인한 경기침체 우려 및 대출비용 부담증가로 주택 수요자들의 매수심리가 위축되고, 주택가격 하락 등으로 부동산 거래절벽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지난달 아파트 입주전망 역시 전국적으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