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중소 건설사들 “부도·현장 이탈 현실화”
건축사들 역시 “설계비 한 곳에서도 못 받아”
돈 지급해야 하는 대형 건설사들도 ‘미분양’ 공포
[헤럴드경제=서영상·유오상 기자] 시중은행의 부동산 PF 대출이 중단되는 등 금융시장 경색이 심화하면서 중·대형 건설사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공사를 맡는 관련 하도급 업체들 마저 ‘연쇄 도산’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현장에서는 대금 지급을 받지 못해 경영 위기를 겪고 있는 업체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PF 대출 중단에 더해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일어날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울산의 한 지역주택 건설현장에서는 준공 직전 하도급 업체들이 부도를 내면서 조합과 시공사가 동시에 위기에 빠졌다. 일찍이 지역 중소 협력사들이 경영 위기를 겪으면서 시공비 조기 지급 등의 자구책을 펼쳤지만, 높아진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을 감당하지 못했고 일부 업체들은 현장에서 이탈했다.
인근 다른 공사 현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문건설협회 지역 관계자는 “지역 업체의 경우 인건비 급등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여기에 더해 사업자금 대출 역시 최근 어려워지며 돈이 돌지 않고 있다. 사업을 하면서도 경영이 어려운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역 전문건설업체의 부도 사태는 현실화하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부산과 대구, 충북, 강원 등 지역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등록 업체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매달 꾸준하게 등록 업체수가 증가했던 예년과 비교하면 이례적 현상이다.
부동산 사업의 첫 단추를 꿰는 건축사들의 사정도 심각하다. 통상 시행사들은 땅을 사기 전 또는 가지고 있는 땅에 건축물을 지을 때 가장 먼저 건축사에 설계 용역을 맡긴다. 대략적인 분양면적 등을 추산해 수지타산을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PF를 통해 돈을 모으기 4~5개월 전부터 설계에 들어간다는 것이 건축사들의 설명이다. 자금이 확보되기 전부터 설계를 진행하기 때문에 돈줄이 막힐 경우 용역비를 지급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에서 나홀로 아파트 또는 다세대 주택을 주로 설계한다는 건축사 A 씨 역시 올해 중순 이후 설계 용역을 맡은 사업장 4곳의 설계비를 전부 못 받고 있다. 4곳 모두 서울내 현장으로 그 액수만 수천만원에 이른다.
이 중 한 곳은 최근 토지를 매각해 설계용역비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A 씨는 "길게 6개월 정도 지금처럼 돈이 막혀있으면 은행들에서 땅들을 가져간 뒤 공매나 경매 통해 몇년 후에나 설계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경기 성남의 한 설비공사 업체 대표 역시 "최근 대형 공사가 예정돼 있었는데 대출 문제 탓에 원청의 본계약이 연기되며 하도급 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라며 "이미 진행 중인 현장 역시 자금난 탓에 시공비 조기 지급을 요구하는 업체들이 절반 이상인데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들에게 공사비를 지급해야 하는 중대형 건설사들 역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최근 토지주택연구원이 발표한 ‘주택시장 변화에 따른 수급 진단과 향후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919개 중대형 주택건설업체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좀비기업’ 또는 잠재위험군 기업은 모두 372곳으로 집계됐다. 비율로 따지면 40.5%에 달한다.
건설업계 내에서는 “연말 미분양 사태가 확대되면 진짜 대란이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고금리 탓에 그간 분양을 미뤘던 건설사들이 일제히 분양에 나서면서 이달 전국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은 5만2679가구에 달하는데, 부동산 경기 침체 탓에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는 PF 대출금 상환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지방의 경우, 어디까지 미분양이 날지가 중요한 상황”이라며 “대형 건설사들은 미분양에도 큰 영향이 없겠지만, 중소형 건설사들은 타격이 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