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공시가 현실화율 2020년 수준으로 낮출 것”

문재인 정부 공시가 현실화율 로드맵 수정하기로

공시가가 시세보다 비싸지는 현상 해소방안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정부가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기로 했다.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가팔라지면서 실거래가보다 공시가격이 더 높아지는 ‘역전현상’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값은 떨어지는 데 세금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은 오히려 올라 세부담이 커진다면 국민들의 반발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는 22일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에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를 열어 공시가 현실화율 수정·보완 방안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공시제도 개선을 위한 전문가 자문위원회 위원인 건국대 유선종 부동산학과 교수는 내년에 적용하는 공시가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출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내년에 적용되는 현실화율은 공동주택 기준으로 평균 69.0%로, 올해 71.5%보다 낮아지게 된다.

가격대별로는 9억원 미만 아파트에 적용하는 현실화율이 68.1%, 9억원 이상∼15억원 미만 69.2%, 15억원 이상 75.3%다.

올해와 비교해 현실화율이 9억원 미만은 1.3%포인트(p), 9억원 이상~15억원 미만, 15억원 이상은 각각 5.9%p 낮아진다. 상대적으로 현실화율이 높았던 9억원 이상 아파트가 조정의 수혜를 더 많이 보게 된다.

앞서 국토부는 1차 공청회를 통해 당초 72.7%로 계획돼 있었던 내년 현실화율을 올해(71.5%) 수준으로 동결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었는데, 보다 강경하게 정책적 방향을 선회했다.

이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전날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원 장관은 지난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부동산 가격 하락이 너무나 단기간에 급속도로 진행됐다”며 “공시가에 대해선 앞서 조세재정연구원이 공청회에서 제안한 (동결) 정도로는 부족해 더 강화한(현실화율을 더 낮추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대국민 약속은 최소한 2020년 수준으로 세금과 국민 부담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유 교수는 "최근 부동산 시장 상황이 내년까지 이어질 경우 공동주택 일부에서 나타나는 역전 현상이 가격 민감도가 낮은 단독주택·토지까지 확대될 수 있다"며 "공시가격 제도의 수용성이 악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현실화 계획 시행 전인 2020년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 공시가 현실화율 하향 이중 효과…내년 종부세 확 준다 [부동산360]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 [연합]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2020년 세운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의 전면 폐기를 의미한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11월 주택 공시가격을 10년에 걸쳐 시세의 90%까지 올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공동주택이 평균 71.5%, 표준주택(기준 단독주택)은 평균 58.1%인데, 이를 각각 2030년, 2035년까지 목표치인 90%에 도달하도록 설계했다. 2020년 평균 69%였던 공동주택 현실화율은 이에따라 지난해 70%대로 높아졌다.

하지만 최근 집값이 급락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경기도나 인천 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시세보다 20~30%씩 급락하는 단지가 나오면서 공시가격이 시세보다 비싸지는 현상이 속출했다. 올 들어 9월까지 조세심판원에 접수된 종합부동산세 불복 심판 청구는 3843건으로 전년(284건) 대비 13.5배 늘었다. 올해 주택분 종부세 고지서가 21일 120만여명에게 발송돼 불복 심판 청구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집값은 급락했는데, 과세액은 올 초 급등한 공시가격을 토대로 매겨졌기 때문이다. 공시가가 높아지면 이에 연동되는 재산세,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은 모두 상승한다.

정부가 원희룡 장관의 말처럼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춘다면 현재 71%대 현실화율은 69% 수준으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밖에 이날 공청회에서는 현실화율 최종 목표치를 90%에서 80% 낮추고, 목표 달성 기간도 2035∼2040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의 경우, 부동산 시장 상황이 불안정한 점을 고려해 올해 하반기에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1차 공청회 때 조세재정연구원이 내놓은 제안과 동일하다.

정부는 이달 안으로 공시가격 현실화율 수정안을 확정,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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