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이후 기업이 가격 결정권 확보
그럼에도 정부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국제 가격 반영하지 못해 손실 발생할 수 있어
[헤럴드경제=한영대 기자] 액화석유가스(LPG) 수입사인 SK가스, E1이 국제 가격 상승에도 국내 LPG 가격을 또다시 동결했다.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지만, 가격 결정 과정에서 정부 입김이 작용했다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국내 LPG 가격 결정 주체가 정부에서 시장으로 넘어간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기업은 여전히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국제 가격 상승분을 국내 가격에 제때 반영하지 못하면서 기업의 부담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SK가스는 이달 프로판 가격을 ㎏당 1274.81원, 부탄 가격을 ㎏당 1541.68원으로 결정했다. 이는 지난달 가격과 같다.
E1도 가격을 동결했다. E1의 이달 프로판 가격은 가정·상업용 ㎏당 1275.25원, 산업용 1281.85원이다. 부탄 가격은 ㎏당 1542.68원이다. 이로써 국내 LPG 가격은 작년 5월부터 현재까지 계속 동결 내지 인하되고 있다.
LPG 수입사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통보한 국제 LPG 계약가격(CP)을 기준으로 매월 말 국내 공급 가격을 정한다. 국제 가격은 한 달 시차를 두고 국내 가격에 반영된다.
지난달 국제 LPG 가격이 크게 오른 만큼 SK가스, E1도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아람코는 지난달 t당 프로판·부탄 가격을 전달 대비 각각 200달러, 185달러 올렸다. 큰 폭의 가격 인상에도 양사는 가격 동결을 결정했다.
SK가스, E1이 이와 비슷한 결정을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아람코는 프로판 가격을 전달 대비 t당 40달러 인상했다. 국제 가격이 올랐음에도 올해 1월 SK가스(1324.81원), E1(가정·상업용 기준 1325.25원)의 ㎏당 프로판 가격은 지난달보다 20.55원 하락했다.
SK가스, E1은 가격을 동결한 이유로 소비자 부담 완화를 꼽았다. SK가스는 “LPG를 사용하는 소비자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입장 표명에도 일각에서는 최근 물가 안정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정부 압력에 부담을 느낀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2001년까지 정부가 통제했던 국내 LPG 판매 가격은 현재 기업이 결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업체들은 LPG 가격을 정할 때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23일 SK가스와 E1, 정유 4사와 동절기 LPG 가격 점검 회의를 열고 가격 안정화에 힘써 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여기에 SK가스, E1은 지난해 기대 이상의 실적을 달성, 직원들에게 역대급 규모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SK가스는 기본급의 800~900%를, E1은 기본급의 1500%를 지난해 성과급으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 LPG 가격을 인상하면 난방비 폭탄 등 국민적 에너지 부담을 외면했다는 여론 역풍을 맞을 수 있어 결국 동결 결정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SK가스, E1은 LPG 제품 수출, 트레이딩 사업 등을 통해 수익을 보전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가격 흐름과 관계 없이 국내 가격을 계속 동결하면 양사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리오프닝 영향과 같은 변수로 향후 LPG 가격 불완전성은 이전보다 더욱 커졌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