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대책’ 후폭풍
“LH 매입해 지원하는 것도 세금쓰는 건 같아”
“수십, 수백채 임대사업자 피해만 지원하나?”
“전세사기인지, 전세사고인지 구별할 수 있나?”
“형평성, 공정성 논란 계속 될 가능성”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과거 전세사기 피해자도 소급 적용 가능한가요?”, “지역주택조합 사기 당한 것도 구명해줄 방법은 없을까요?”
국민의힘과 정부가 최근 내놓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문제점을 꼬집는 글들이 수백개씩 올라오고 있다. 피해를 당한 세입자들의 억울한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세금을 동원해 지원하는 건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 비교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대부분이다.
당정은 최근 공공이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매입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피해를 당한 세입자에게 해당 주택 경매에서 ‘우선매수권’을 주고, 임대로 계속 살기를 원한다면 지자체나 LH 등 공공에서 대신 우선매수권을 행사해 해당 주택을 사서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한다는 게 핵심이다.
물론 이 지원 방식은 야당과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직접적인 피해 보증금 지원 방안과 다르다. 야당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이 피해금액을 먼저 보상하고, 향후 경매·공매·매각 등을 통해 투입 자금을 회수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선 지원, 후 구상권 청구’ 방식이다.
▶“직접 지원하나, LH 통해 지원하나 거기서 거기?”= 당정은 이 방식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기당한 피해 금액을 국가가 먼저 대납해서 돌려주고, 그게 회수가 되든 말든 떠안으라고 하면 결국 사기 피해를 국가가 메꿔주라는 것”이라며 “사기 범죄에 대해 앞으로는 국가가 떠안을 것이라는 선례를 대한민국에 남길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럼에도 당정의 방안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는 형식만 다를 뿐 정부가 사기 범죄에 대한 피해를 떠안고 간다는 차원에서 다르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 주택시장 전문가는 “야당이 요구하는 ‘선 지원, 후 구상권 청구’ 방식과 당정이 추진하는 ‘LH 우선매입권 행사 뒤 공공임대주택 제공’이라는 것과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직접적으로 보증금을 주는 방식은 아니지만 공공기관인 LH가 정부 대신 빚을 떠안고 집을 사 세입자에게 혜택을 준다는 차원에서 정부 세금이 들어가는 건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원 장관은 “이미 예산과 사업 시스템이 갖춰진 LH 매입임대제도를 확대 적용해 전세사기 피해 물건을 최우선 매입 대상으로 지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마련된 매입임대사업 예산을 쓰기 때문에 추가로 돈이 들어가진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LH가 매입임대주택을 선택할 때는 기준이 있다. 생활편의성 등 입지여건, 건물 노후정도 등 주택의 상태, 토지형상 등 대지의 상태, 임대가능호수, 채권채무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따진다. 중장기적으로 LH에 손해가 될 물건은 사지 않도록 주의한다는 차원이다.
하지만 전세사기 물건을 최우선 매입대상으로 할 경우는 이런 기준이 제대로 적용될 리가 없다. 잘 알려졌듯 전세사기 대상 주택은 대부분 빌라(다세대주택, 연립주택)로 지역에 따라 매매가격보다 전세가격이 더 높은 경우가 흔할 정도로 주거 선호도가 떨어진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중 우선매입권을 행사해 집을 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집을 산다는 건 향후 집값 전망 등 미래가치를 고려해 결정하는 것인데, 이런 임대주택 대부분은 투자가치가 거의 없다는 게 시장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주택 선정 기준, 매입 금액 등 논란 확대 불가피= 이번 대책은 향후 발표될 세부 내용에 따라 논란이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우선 전세사기 주택 선정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주택시장 침체에 따른 단순 전세금 미반환 사건인지, 진짜 전세사기 피해 물건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사실 전세사기 사건을 명확히 특정하기도 쉽지 않다. 집값 하락기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서 주택 임대사업을 하다가 전세사기로 고소를 당했지만 무죄 판결이 난 경우는 꽤 많다. 사기 범죄가 성립되려면 계약 당시부터 고의성이 입증돼야 하는데 명확한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2010년대에도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 등에서 200채 넘게 갭투자를 했던 한 임대사업자가 역전세난을 맞아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해 세입자들이 ‘사기’로 고소한 사건이 있었는데, 법원에서 사기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최근엔 당시 피해를 입으며 억지로 떠안은 아파트 가격이 문재인 정부를 지나면서 두 배 이상 급등해 오히려 큰 호재가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전세사기’ 주택을 선정하는 기준을 만들게 되면 형평성 논란도 불가피하다. 지금 논란이 되는 전세사기 사건은 모두 수십채, 수백채 대규모 임대사업을 하다가 주택시장 침체로 사업자가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경우다.
만약 임대주택 1~2채를 보유한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렵게 됐다면 이건 애초에 지원 대상이 아닌지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 한 전문가는 “수백채 임대사업자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나, 집 한 채 있는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나 피해자란 점에선 똑같다”며 “정부가 지원 대상을 정할 때 형평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가 새로 만들어지는 제도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 매수 가격의 기준을 정하기도 쉽지 않다. 우선매수권을 대신 행사할 수 있게 된 정부 차원에서야 단독 입찰을 통해 계속 유찰시켜 더 낮은 가격에 사는 게 좋겠지만 시장이 그냥 싸게 낙찰되도록 둘 리 없다. 경매 입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투자 대비 수익을 따진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의 차이, 전세시장 흐름 등을 고려해서 수익이 날만하면 들어온다.
경매가 경쟁 입찰이 되는 순간 LH 등은 무리해서라도 우선매수권을 행사해야 전세 사기 피해를 입은 주택을 살 수 있다. 이미 130조원 규모의 부채를 안고 있는 LH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강은현 EH경매연구소 소장은 “문재인 정부 말기 급증했던 갭투자 물건 중 집값과 전셋값이 동시에 떨어져 경매로 넘어올 물건은 앞으로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주택시장 침체가 계속 되는 한 전세 피해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정부 대책의 형평성 및 공정성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