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삼성전자가 영입한 투자 전문가 마코 키사리 삼성반도체혁신센터(SSIC) 센터장 겸 미국 파운드리 사업부 부사장이 “인공지능(AI), 고성능컴퓨팅(HPC), 자율주행에 대한 칩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향후 삼성 반도체 인수합병(M&A) 향방에 관심이 모아진다. 최근 22일간의 미국 출장을 마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관련 분야 기업들과 접촉해 반도체 딜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키사리 센터장은 지난달 말 열린 ‘글로벌 반도체 연합(GSA) 기술 심포지엄’의 기조연설을 맡아 글로벌 거시경제 변화에 따른 삼성 반도체 사업의 기회와 도전 요인을 설명하며, 미래 수요가 예상되는 분야로 ▷AI ▷HPC ▷전기차와 자율주행을 꼽았다. 마코 키사리 센터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들 시장의 발달이 칩 시장의 주요 수요처로 부각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SSIC는 지난 2017년 삼성전자의 80억달러(약 9조원) 규모 하만 딜을 성사시킨 손영권 고문(前 최고전략책임자)이 센터장을 맡았던 곳으로, 삼성의 미래성장 동력 발굴을 담당한 조직이다.
지난해 5월 영입된 키사리 센터장은 삼성 반도체의 M&A 역할을 맡을 것으로 주목받는 인물이다. 그는 2018년부터 BoA 메릴린치에 근무하며 반도체 IB 부문의 글로벌 총괄 책임자를 역임했다. 또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글로벌파운드리스에서 M&A 업무를 지휘한 바 있다.
글로벌 차량 반도체 기업 인피니언의 사이프러스 인수(100억달러 규모)를 비롯해 아날로그디바이스의 리니어테크놀로지 인수(147억달러), 브로드컴의 브로케이드 인수(56억달러 규모), 퀼컴의 세계적인 차량 반도체 기업 NXP 인수 시도 등이 키사리 센터장이 자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NXP는 삼성의 반도체 관련 인수 대상 기업으로 시장에서 꾸준히 회자되는 기업이다.
키사리 센터장은 지난해 8월 BoA 메릴린치에서 같이 근무하던 스테판 밀드 상무를 영입하며 관련 딜 업무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밀드 상무는 지난해 M&A 관련 실무 책임자(Head)로 직책을 맡아 활동 중이다. 그는 BoA 메릴린치에서 기술 관련 투자은행(IB) 업무를 담당했던 반도체 딜 분야 전문가이다.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기업인 AMD에서 2001년부터 8년간 근무했고, 2009년부터는 전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칩 수탁생산) 4위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스에 약 11년간 몸담으며 회사의 M&A 업무를 맡았다.
올해 삼성전자 미국법인의 M&A 실무 인력들이 보강되며 관련 반도체 딜에 대해 더욱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반도체 설계, 자동차, 차세대 전력 반도체 등 기업에 대한 경험이 있는 인력들이 영입되며 관심을 높이고 있다. 키사리 센터장이 언급했던 미래 칩 수요 시장의 흐름과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이다.
특히 BoA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 출신 M&A 실무자들이 추가 영입됐다. 해당 인력 중에는 ▷2022년 완료된 AMD의 500억 달러(한화 약59조8000억원) 규모 자일링스에 대한 인수 ▷ 울프스피드의 회사채 발행 ▷2021년 미국의 전기차 기업 루시드모터스의 스팩과의 합병을 통한 상장 작업 등 업무를 맡았던 이력이 있는 인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인 AMD는 삼성전자와도 반도체 칩 협력을 꾸준히 진행하는 기업이다. AMD는 반도체 업계에서 손 꼽히는 대형 M&A인 자일링스 인수를 통해 인공지능(AI) 기반 지식재산권(IP) 프로세서를 바탕으로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데이터센터의 핵심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울프스피드는 차세대 화합물 반도체로 불리는 실리콘 카바이드(SiC) 웨이퍼 시장에서 점유율 62%를 기록하고 있는 1위 업체이다. SiC 전력반도체는 향후 미래 전기차 등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럭셔리 세단 중심 전기차를 판매하는 루시드모터스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관심도 크다.
나아가 이 회장이 2014년 이래 역대 최장인 22일간의 미국 출장에서 최근 돌아오며 이들 기업에 대한 관심도 한층 커지는 모습이다. 이 회장이 이번에 미국에서 만난 기업인들이 AI, 전장용 반도체 등과 관련된 기업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특히 이 회장은 빠듯한 일정 중에도 AI 분야 ‘구루(Guru)’와의 교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AI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인정 받는 전문가들과의 회동을 통해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AI 활용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삼성전자와의 협력 강화 방안에 대해서 논의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바이오, 전장용 반도체와 차세대 이동통신은 미국 기업이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며 “미국과의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사업의 존폐를 가름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