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미중 통상 갈등과 전세계 반도체 공급망 재편 속에서 인도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1분기 미국 반도체 수출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7배 증가하며 최대 수혜를 누렸다. 소프트웨어 분야의 고급 인력과 거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제조업이 크게 성장하며 반도체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반도체 수입 규모는 154억 달러(약 20조 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1% 늘어났다.
동남아 지역으로부터의 수입액 증가가 눈에 띈다. 가장 큰 수혜를 누린 곳은 인도와 캄보디아다. 인도의 1분기 미국 반도체 수출 규모는 4억9710만 달러(약 66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791.9% 증가했다. 1년만에 약 37배 폭증한 셈이다. 캄보디아도 4억9990만 달러(약 6650억 원)을 수출한 것으로 집계돼 전년 동기 대비 488.6% 늘었다.
한국도 11억 달러(1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5% 증가했다. 베트남, 태국도 각각 17억달러, 15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62.6%, 90.1% 늘어났다. 대만은 22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1% 늘어나는데 그쳤다.
무역 규제가 현실화되고 있는 중국은 7억102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0.8% 감소했다. 반도체 시험 및 패키징 공정 시설이 많은 말레이시아는 33억달러로 미국 반도체 수입국 중 가장 많은 점유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32.3%나 감소했다. 전통 반도체 강국인 일본도 5억2860만 달러로 5.2% 감소했다.
최근 반도체 업계는 인도에 주목하고 있다. 인도에는 아직 반도체 제조 시설이 없지만, 고급 소프트웨어 인재를 기반으로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큰 강점을 가지고 있다. 세계 주요 반도체 회사 중 8개가 인도에 디자인 센터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인도 정부는 최근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을 앞세워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내걸고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 내에 반도체 팹을 설립하면 건립비용의 50%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2026년 말 양산을 목표로 인도 구자라트주(州) 특별투자지역에 80억~100억달러(약 10조~13조원)를 들여 인도 최초의 반도체 팹(공장)을 짓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 제조업체 대만 폭스콘과 지난해 반도체 제조 합작회사를 설립했고, 일본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 30곳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인도는 미국과 중국의 통상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 시장을 대체할 글로벌 생산 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IT 및 소프트웨어 분야의 인재 확보에 용이하고, 거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경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인도는 영국을 제치고 GDP(국내총생산) 세계 5위에 올랐다. 10년 내에는 독일, 일본도 제치고 3위에 오를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인도는 지난해 경제가 6.8% 성장했고, 올해도 5.9%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애플의 팀 쿡 CEO(최고경영자)가 1분기 실적 발표 후 인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진입하고 있다”며 ‘티핑 포인트(작은 움직임만 더해져도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는 단계)’라는 표현을 썼다.
국제 정세적으로도 인도의 포지션은 유리하다. 인도는 중국과 국경 분쟁을 비롯해 다양한 대립 양상을 띄고 있다. 역시 중국과 갈등 관계인 미국이 인도를 지원하는 양상이어서, 향후 인도가 미국과 손잡고 반도체 시장 쪽 영향력을 키울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올 1월 미국 백악관은 인도와 첨단기술 분야의 파트너십 구축을 선언했고, 3월에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인도를 찾아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