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코로나19 피해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코로나 대출 연장·유예) 조치로 잦아들었던 연체액 등 부실 지표가 급증하고 있다. 경기 둔화와 함께 고금리·고물가 현상이 이어지며 이자도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난 탓이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코로나 대출 연장·유예 조치 종료 절차도 시작되면서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거액의 ‘코로나 빚잔치’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만기연장·상환유예 효과에도 원상복귀”…은행권, 산업별 연체액 급증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산업별 대출 연체액은 지난해 하반기를 기점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서비스업, 도소매업, 숙박·음식업 등 자영업자 인기 업종을 중심으로 연체액 증가세가 뚜렷하게 드러난 것으로 확인됐다.
4대 은행의 1분기 말 기준 서비스업 연체액은 3562억원으로 불과 6개월 전(2763억원)과 비교해 800억원(28%)가량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직전 6개월 증가폭(231억원)과 비교해 4배가량 빠른 속도다. 같은 기간 도소매업의 경우 2013억원에서 3406억원으로 69%(1393억원) 증가했다. 숙박·음식업의 경우도 단 6개월 만에 716억원(60%)의 연체액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4대 은행의 산업별 대출 연체액은 2020년부터 꾸준히 감소세를 기록한 바 있다. 2020년 4월부터 정부의 코로나 대출 연장·유예 조치가 시행되며, 자영업자들의 상환 부담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고물가·고환율 현상이 거세지며 연체액은 상승세로 전환했다. 대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난 반면, 경기는 점차 침체기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못 갚는 돈은 많아지는데…대출 수요는 늘어난다
실제 고금리에 따라 다소 주춤했던 개인사업자들의 대출 수요는 다시금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약 312조7000억원으로 4월(312조3000억원)과 비교해 4000억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1월부터 4월까지의 증가폭도 매월 5000~6000억원 수준을 유지했다. 올해 들어서만 약 2조원가량의 대출 잔액이 늘어난 셈이다.
문제는 부실 우려다. 현재 경기 둔화가 지속되면서 매출 상승으로 인한 상환능력 회복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6월 소상공인 경기전망지수는 80.8로 지난달(88.9)과 비교해 8.1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자영업자가 가구주인 가계의 월평균 소득은 471만7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했다. 감소 전환은 2020년 1분기 이후 3년 만에 처음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체율 추이도 유사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4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평균 0.35%로 전년 동기(0.24%)와 비교해 0.12%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대출 연장·유예 조치로도 억누르지 못한 잠재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도 실물경기 둔화, 일부 취약업종 및 영세 자영업자의 채무상환 능력 저하 등을 원인으로 꼽으며 2분기 중소기업 신용위험지수(28)를 전분기 대비 3포인트 상향한 바 있다.
“빚 더 내야할 상황인데”…10월 ‘코로나 청구서’ 날아온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당국은 지난 3년간 총 6차례 연장해 온 코로나 대출 연장·유예 조치의 종료 수순에 돌입했다. 만기연장의 경우 자율협약에 의해 2025년 9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다만, 채무자 중에서도 부실 위험이 높은 상환유예 대상자의 경우 올 9월을 마지막으로 지원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기존에 대출 상환을 유예받았던 차주들은 오는 10월부터 최대 60개월 간 원리금 상환에 들어간다.
조치가 종료되며 감춰왔던 ‘부실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각계의 부실 위험 우려에 대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려가 많은 상환 유예 차주의 경우 대다수가 ‘상환 계획서’를 쓰고 금리를 낮추는 방식으로 채무를 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상환유예 차주 중 중점 관리 대상자의 98%인 1만4000여명이 계획서 작성을 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전문가들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고 경고했다. 자영업자들의 상환 능력이 악화하는 것과 반대로, 매출 감소로 인한 대출 수요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가 지속적으로 둔화되며 다수 자영업자들은 현재 빚이 빚을 낳는 굴레에 빠져 있는 상태”라며 “금융 지원과 함께 충분치 않다고 지적받아 온 폐업 지원의 실효성을 높이는 등 다양한 출구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