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지헌·김민지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쇄신을 다짐하며 출범시키는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가 삼성의 가입으로 위상 회복에 탄력을 받게 됐다. 삼성에 이어 SK·현대차·LG 그룹의 합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가운데, 류진 신임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 효과까지 더해지며 미·중 패권 경쟁에 움츠린 국내 경제계의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경협이 ‘재계 맏형’ 위상을 온전히 확보하며 경제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싱크탱크이자, 재계 주요 가교로서의 역할을 강화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오는 22일 400여개 회원사가 모여 개최하는 임시총회에서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로 바꾸고, 삼성의 한경협 가입 사실을 밝힐 예정이다.
또 류 회장을 새 회장으로 추대하는 안건을 상정한다. 추대안이 가결되면 류 회장은 한경협 초대 회장직을 맡는다. 임기는 2년이다. 이달 초 제 39대 전경련 수장으로 추대된 류 회장은 고(故)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의 막내 아들이다.
22일 임시총회에서 삼성의 한경협 가입이 공개되면서, 재계에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4대 그룹 없이 한경협이 출범하며 허울뿐인 새 경제단체의 출범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전해지기도 했다.
삼성을 비롯한 4대 그룹의 한경협 가입에 속도가 높아지면서, 명실공히 전경련의 과거 위상이 회복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전경련은 한국 경제와 경영 역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지난 2016년 당시 미르·K재단 출연금 등 정경유착의 고리로 지적되며 위상이 추락했다. 이로 인해 2017년 초부터 4대 그룹이 순차로 탈퇴하고 지난 정부에서는 ‘패싱’ 논란까지 불거지며 논란을 낳았다.
전경련은 지난 5월 ‘싱크탱크형 경제 단체’로 거듭나고, 분야별 위원회를 운영해 사무국 중심의 독단적 의사 결정에서 벗어나겠다는 혁신 초안을 내놨다. 임시총회에서는 윤리경영위원회 신설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며, 질적 변화에도 한층 힘을 실을 예정이다.
4대 그룹의 복귀가 진행되면서 한경협의 수익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 말 기준으로 전경련 당시의 회비수익은 408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70% 가량이 삼성·현대차·LG·SK 등 4대그룹에서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100억원, 나머지 SK·LG·현대차는 50억원 수준의 회비를 냈었다. 하지만 이후 4대 그룹의 탈퇴 러시가 이어지면서 2017년 전경련의 회비수익은 113억원으로 급감했다. 수익이 증가하면서 경제단체로서의 조직 강화 역시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또 최근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을 시행하면서, 어느때보다 한미 관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이해 관계 역시 첨예해진 상황이라 류 회장과 4대 그룹의 역량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반도체·배터리·모빌리티와 관련된 사업을 하는 4대 그룹이 한경협에 힘을 실으면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으로 인해 글로벌 무대에서 입지가 불안정한 국내 경제계의 숨통이 트일 지도 주목된다.
다만 그동안 꾸준히 우려 사항으로 지목된 정경유착 가능성은, 새로 출범하는 한경협이 풀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단 설명이다.
이날 위원회도 전경련 혁신안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명했다. 이날 오전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위원회로서는 현재 시점에서 전경련의 혁신안은 선언 단계에 있는 것이고 실제로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과 확고한 의지가 있는 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며 “(새로 출범하는) 한경협이 과연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단절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 지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철저한 준법 감시”라며 “전경련의 인적 구성과 운영과 관련돼 어떠한 명목이든지 정치권이 개입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권고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의 우려도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4일 성명을 내고 “4대 그룹이 전경련에 다시 가입할 어떠한 명분도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정무위원들도 지난 9일 성명에서 “제대로 된 혁신도 없이 간판만 바꿔 달고 신(新) 정경유착 시대를 열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계 관계자는 “(4대 그룹이) 설령 이번에 한경연 회원 자격은 자동 승계하더라도 회비 납부 등 본격적인 활동은 시간을 더 두고 봐야 할 수도 있다”며 “명실상부 재계 맏형으로서, 정경유착을 근절했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장기적 실천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