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계 박영순에 이어 설훈도 민주당 탈당
“방탄만 생각하는 민주당에 남을 수 없다”
집단이탈 우려에도 침묵 이어가는 이재명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4·10 총선 공천을 둔 계파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에서 현역의원 연쇄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비명(비이재명)계 박영순 의원에 이어 민주당에서 5선을 지낸 설훈 의원이 28일 탈당하면서다. 민주당 안팎에선 총선을 앞두고 집단 탈당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이재명 대표에게 수습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는 또 침묵했다.
설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이 아닌 이재명을, 민생이 아닌 개인의 방탄만을 생각하는 민주당에 저는 더이상 남아 있을 수 없다”며 탈당을 공식화 했다. 그는 “감히 무소불위의 이 대표를 가감 없이 비판했다는 이유로 하위 10%를 통보 받았고, 지금까지 제가 민주당에서 일구고 싸워온 모든 것들을 다 부정 당했다”며 민주당의 공천이 불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설 의원은 “지난 40여 년 동안 민주당이 버텨왔던 원동력은, 그리고 국민이 민주당을 신뢰했던 이유는 바로 민주당의 민주화가 제대로 작동되었기 때문”이라며 “이제 민주당은 민주적 공당(公黨)이 아니라 이 대표의 지배를 받는 전체주의적 사당(私黨)으로 변모됐다. 이 대표는 연산군처럼 모든 의사결정을 자신과 측근과만 결정하고, 의사결정에 반하는 인물들을 모두 쳐내며 이 대표에게 아부하는 사람들만 곁에 두고 있다”고 거듭 비판했다.
설 의원은 이낙연 대표 주축 새로운미래 입당과 무소속 출마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만난 그는 “부천시을 지역위원들과 모두 함께 의견을 나눴다. 그 분들은 무소속이 좋겠다고 얘기하고 있다”며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역의원들의 집단 탈당 기류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차례로 탈당하든 다른 방식으로 민주당에 변화 요구하는 형태가 있을 것”이라며 “당장 몇 명이라 말하기 보단 차근차근 지켜봐달라”고 답했다.
설 의원의 탈당 선언 직후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이 대표는 공천 과정에서 거듭되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전날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홍영표 의원 등 친문(친문재인)계를 포함한 비명계 의원들의 집단 반발에도 대꾸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총회에 참석했던 한 비명계 의원은 이날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당 공천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논란과 의혹에 대해 소명하라는 의원들의 요구가 쏟아지는데 이 대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 대표가 자리를 뜬 이후에도 의원들은 의원총회를 이렇게 끝낼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었던 여론조사, 임종석 전 실장 컷오프, 현역의원 하위평가 등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이라도 해달라고 요구했다”며 “결국 ‘조사해보겠다’는 홍익표 원내대표의 말만 돌아왔다”고 비판했다. 의원총회 도중 이석한 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우리 의원님들께서 여러가지 의견을 주셨는데 당무에 많이 참고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서울 중성동갑 출마를 고집해온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실상 공천 배제되면서 친명-친문(친문재인) 갈등은 수습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더해 중앙당선거관리위원장을 사퇴한 정필모 의원이 불공정 논란이 일었던 여론조사업체 선정 과정에서 허위 보고를 받았다는 폭탄 발언을 하면서 친명 지도부에 대한 반발은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한 초선 의원은 “공천관리, 선거 준비 관리 과정에서 갈등 의혹 논란이 점입가경”이라며 “이대로 정상적인 선거를 치를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재선 의원은 “결국 임 전 실장을 선거에 뛰지도 못하게 만들었는데, 친문계 다같이 손잡고 당을 나가라고 등 떠미는 것”이라며 “임종석이 아닌 전현희가 중성동갑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이길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설명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는데 지도부는 침묵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도부가 빠른 시일 내에 의원들을 설득할 수습책을 내놓지 못하거나 이 대표의 당대표 사퇴든 불출마든 책임 있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당을 이탈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