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항공 투어 이스탄불, 스톱오버 여행⑤
-골든혼과 마르마라해가 감싸는 구시가지2
[헤럴드경제(이스탄불)=함영훈 기자] 튀르키예 최대도시 이스탄불(수도는 앙카라) 여행을 거론할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헤리티지는 성 소피아 성당(현재 아야소피아 모스크)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아야 소피아는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6세기 성소피아성당으로 지어졌고 이슬람 정복 이후 한동안 박물관 기능을 하다, 최근엔 모스크로 이용된다.
초기엔 크리스트교를 지우고 이슬람 색을 칠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요즘은 과거에 지운 흔적을 다시 복원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스페인에선 코르도바 모스크가 레콩키스타(크리스트교 세력의 이슬람 축출) 이후 이슬람 흔적을 지우고 성당으로 덧칠하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성 소피아 앞에서 솔로몬, 의문의 1패= 4세기에 지어진 ‘하기아(지혜,통찰력을 의미) 소피아’ 자리에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길이 81m, 너비 70m로 신축했다. 지금도 이 사원의 풀네임에는 ‘하기아’가 들어간다. 하기야, 성당을 모스크로 바꿨으니, 옛 이름을 넣어줄만도 했겠다.
4개의 지주 위에 대형 아치를 두었다. 지금은 이슬람 교도들의 예배당이 되어 1층 본당에는 못들어가고, 입구에서 2층으로 바로 올라간다.
성당 천장 모서리엔 성모마리아가 내려다 보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2층 정중앙 황후의 자리에서 보면, 아래로는 성도들이 있고, 위로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이 바로 보인다.
성당이 준공되자 로마 황제는 감격한 나머지, 지혜의 상징 솔로몬을 축사 속에 소환하면서 “내가 당신에게 이겼오!”라고 외쳤다고 한다.
모자이크 작품들은 크리스트교 내분 사건인 8~9세기 성상파괴운동때, 15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점령때, 상당부분 파괴됐으나, 2층 복도 벽면에 덧칠된 석회질을 벗기자 일부 모자이크 벽화가 발견됐다.
성당에서 박물관으로, 다시 모스크로 기능이 바뀌었지만, 가톨릭과 개신교도의 성지순례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타문명, 타종교와 공생,포용하는 튀르키예= 튀르키예는 늘 “오스만제국 지배 하에서도 크리스트교도의 신앙활동을 보장해주었다”고 강조한다.
골든혼 남쪽 해안가에 있는 세인트 메리 성당은 이스탄불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이후에 지어진 크리스트 교당이라서 눈길을 끈다. 17세기 최고의 석조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동방박사 3명이 예수를 알현하고 돌아오는 길목에 세워진 이 교회는 성모 마리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많은 크리스트교 신자를 갖고 있는 탁심광장 인근 세인트 앙투안 성당는 오스만 지배 이전에 지어졌고 400년후 불타 사라졌으나, 이슬람인들과 크리스트교도들이 재건에 뜻을 같이했다.
히포드럼 광장엔 기원전 4세기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아낸 그리스가 페르시아군 무기를 녹여 만든 뱀기둥(원래 8m인데 5.5m만 남음), 19세기 튀르키예-독일 우정이 싹트게 된 ‘독일 우물’도 있다. 이 우물을 지나 트램길을 건너면 이스탄불 여행의 참새방앗간 ‘그랜드 바자르’와 6세기에 지하 9m 깊이에 지은 길이 143m, 폭 65m짜리 거대 지하 물궁전 예레바탄이 있다.
▶물이냐, 경기장이냐..경제냐 문화냐 경쟁= 물의 저장고와 물 공급을 위한 수로,수도는 고대 도시의 민심 안정과 생활을 지탱하는 핵심이었기에 중시했다.
수로에 얽힌 슬픈 이야기도 전해진다. 1900년전, 튀르키예 안탈리아지역 군왕은 공고문을 낸다. “시민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만드는 자에게 내 딸을 주겠다”고. 한 청년은 수로를 지어 시민생활을 안정시킨다. 그리고 공사가 일찍 끝나 사윗감으로 내정된다.
하지만 얼마 후 원형경기장이 완성된 후 다양해진 문화콘텐츠에 시민들이 열광하자, 임금은 마음이 바뀌어, “둘 다 내 딸을 가지라”고 결정한다. 삼각관계의 끝은 좋지 않았지만, 당시 수로는 민생경제, 경기장은 문화생활를 대표했음을 보여준다.
아타튀르크 다리 남서쪽에 있는 발렌스 수도교도 워낙 튼튼하게 지어 아직도 남아 그 밑을 오가는 차량 승객들에게 물길을 만들고자 애썼던 위민정치를 기억하게 해준다.
▶발코니는 어떻게 탄생했나= 골든 혼 해안에 위치한 발랏 마을은 형형색색 참 아름다운 채색과 발코니를 뜻하는 ‘발랏’으로 유명해 최근들이 방문객들이 늘고 있다.
홍해 해변도시 사우디 제다의 거상이나 귀족들이 밀집해 살았던 세계문화유산 알발라드의 ‘발라드’가 튀르키예 ‘발랏’과 같은 뜻이다. 발랏은 발코니의 원형이다.
집안 살림하는 여성들이 자기 모습을 노출하는 것을 꺼려, 돌출 창문형 발코니인 ‘발랏’을 통해 바깥을 볼 수 있었다. 이는 나중에 차츰 개방적 형태로 바뀌고 커지면서 오늘날 발코니 형태로 발전한다.
이스탄불 발랏 지구의 구불구불한 길을 걷은 동안 알록달록 채색된 건물과 다채로운 고택들을 감상한다.
그리스어 발랏은 궁전이라는 뜻이다. 튀르키예도, 사우디도 발랏에 사는 사람들은 하이클래스였다. 그리스가 먼저인지, 튀르키예-사우디 등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역이 먼저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골든혼만(灣)과 남쪽 마르마라해가 감싸는 구시가지 지역엔 이밖에 ▷토프카프 궁전박물관 ▷아야소피아 인근 비밀의 정원 같은 아트카페 ‘카페라가 메드레세시’ ▷고대 이후 항구 기능을 해왔던 마르마라해 연안의 예니카피 부두 ▷귈하네 공원 내에 있는 이스탄불 과학 역사 박물관 ▷옛 궁전광장이었던 베야지드 광장과 타워 ▷올드북마켓 ▷4500여개 점포가 보석, 도자기, 향신료, 카펫, 로쿰 젤리, 가죽, 코트, 구리스틸, 기도구슬, 은, 금, 보석 등을 파는 600년 역사의 그랜드바자르 등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