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북한의 ‘섭정왕’이자 2인자를 넘어 사실상의 1인자라는 평가까지 받던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돌연 실각된 배경에는 이미 사망한 리제강 전 노동당 제1부부장의 그림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고위소식통은 6일 장성택 실각에 대해 “한 마디로 죽은 리제강이 산 장성택을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리제강은 지난 201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지만 그를 따르던 인물들이 이번 장성택 실각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장성택 실각은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작품인데, 그는 리제강 라인의 대표격으로 2010년 교통사고가사실상 장성택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은 데 대해 반격을 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리제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으로 1973년 당 조직지도부 지도원을 시작으로 1982년 부부장을 거쳐 2001년부터는 당, 군, 내각, 기타 사회조직 전반의 인사를 총괄하는 제1부부장을 맡았다. 조연준은 리제강 밑에서 지도원, 부과장, 과장 등을 역임하면서 리제강 라인의 핵심으로 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제강은 ‘로열패밀리’ 일원인 장성택에게 직접적 도전은 불가능했지만 김정일을 향한 충성경쟁에서 장성택과 겨룰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했다. 장성택이 2004년 사생활과 분파행동을 이유로 업무정치 처벌을 받았던 것도 리제강이 주도한 것이었다.

장성택과 리제강의 관계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권력이 장성택 쪽으로 급격히 쏠리던 시점에 리제강이 이에 반발하면서 한층 더 악화됐다. 그리고 리제강은 2010년 6월2일 정오를 넘은 시간에 교통사고로 숨졌다. 김정일과 함께 군부대 예술선전대 공연 관람을 갔던 고위층 인사가 심야에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점에서 사망 뒤에도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북한 내부에서는 리제강의 죽음에 장성택이 개입돼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결국 이번 장성택의 실각과 리룡하 당 행정부 제1부부장, 장수길 부부장 공개처형은 피로 점철된 북한 권력투쟁의 냉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 셈이다.

소식통은 “리제강 라인 가운데 일부에서는 장성택을 완전히 제거해야한다는 소리도 있었다”며 “하지만 김정은 입장에서는 장성택이 제거되면 로열패밀리도 위축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고모부라는 점을 고려해서 실각 정도에서 그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대해 한 대북전문가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많지 않아 추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장성택과 리제강의 관계나 조연준의 위상을 고려해볼 때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