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점자로 본 수능의 역사
올해로 스무살이 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은 그 역사만큼이나 숱한 화젯거리와 뒷이야기를 남겼다. 그 중에서도 수능 만점자는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단숨에 유명인이 되곤 했다. 역대 만점자는 각종 방송에 출연하고 오답노트를 책으로 펴내는 등 우리 사회로부터 ‘장원급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첫 만점자가 등장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1994학년도(93년 시행) 두 번에 걸쳐 실시된 1~2회 수능은 시작부터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며 수험생의 혼란만 부채질했다.
200점 만점에서 400점 만점으로 변경된 1997학년도(96년 시행) 수능은 역대 수능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해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전체 수험생의 평균점수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42.7점에 불과했다. 총점제가 시행된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수능 중 가장 낮은 점수다. 2001학년도(2000년 시행)의 100점 만점 환산점수인 69.3점보다 무려 25점가량 낮았다.
‘1호’ 만점자는 7번째 수능이 치러진 1999학년도(1998년 시행)에야 나왔다. 영광의 주인공은 당시 한성과학고 3학년이던 오승은 양. 수능뿐 아니라 40년 한국 입시 역사상 최초의 만점자였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었던 오 양은 클래식 해설자로 출연하기도 했고, 직접 정리한 과목별 정리노트를 출간하는 등 연예인 못지 않은 관심을 받았다. 올해로 서른세살인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생물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하버드의대 시스템 생물학과에서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듬해 2000학년도 수능(99년 시행)에서는 대원외국어고 박혜진 양이 두 번째 만점자가 돼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역대 난이도가 가장 낮은 시험 중 하나였던 2001학년도 수능에서 만점자가 66명이나 나오면서 만점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급속히 시들해졌다. 만점자 중 1명은 서울대에서 낙방하는 웃지 못할 결과가 발생하기도 했다. 총점제가 폐지되고 등급제가 시행된 2002학년도 수능(2001년 시행)은 난이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등급제가 정착되면서 수능 만점자는 더 빛을 잃었다.
하지만 2009학년도(2008년 시행), 2011학년도(2010년 시행) 수능에서 만점자가 계속 배출되는 등 명맥이 이어져 왔다. 가장 최근 실시된 2013학년도(2012년 시행) 수능에서 전과목 만점자는 총 6명이 나왔다. 원주고 3학년인 이민홍 군은 한 공중파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해 ‘훈훈한’ 외모와 성격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양대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