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하락에 재고부족…유럽서 공수까지
“모든 매장의 금 재고가 바닥났다. 수십 년간 금 관련 업종에 종사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홍콩 금은교환시장의 장더시(張德熙) 이사장은 최근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장 팔 금이 없다면서 최근 중국에서 불고 있는 금 사재기 열풍의 실상을 전했다. 그는 “대부분 주문만 받아놓은 상태다. 세공이 필요한 액세서리의 경우 보통 40일, 골드바는 2주 정도 걸린다”면서 “우선 영국ㆍ스위스 등 서양에서 금을 공수해와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 금값이 30년 만의 최대 하락폭을 기록한 지난 15일 이후, 중국을 비롯한 홍콩, 싱가포르, 인도 등 아시아 시장에서 금의 인기는 오히려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금값이 반등하기 전에 사두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특히 전통적인 금 선호지역인 중국에서는 황금연휴인 ‘5ㆍ1 라오둥제(勞動節ㆍ4월 29일~5월 1일)’와 맞물리며 금 수요가 폭증했다.
중국 남부 푸젠(福建)성의 한 귀금속 매장에서는 “3분 후에 가격이 올라갑니다. 지금 바로 점원과 계산을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한 손님이 “여기 있는 골드바를 전부 사겠다. 그리고 무늬가 있는 것 3개가 더 필요한데…”라며 다급하게 주문했다. 그러자 점원은 “무늬 있는 게 들어오면 전화주겠다. 하지만 조금만 늦어도 다른 사람 차지가 된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중국의 귀금속 매장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라고 한다.
중국 전국귀금속업계 통계에 따르면 4월 15일 금값 폭락 이후 열흘 동안 중국에서 팔린 금은 300t가량이었다. 이는 전 세계 연간 금 생산량의 10%다. 푸젠에서는 이 기간 30t이 팔렸다. 지난 6개월 동안 팔린 양과 맞먹는 것으로, 돈으로 환산하면 86억위안(약 1조5480억원)어치다.
아시아인들의 금 사재기 열풍이 금값 추가 하락을 막는 저지선 역할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시아 투자자들이 금값 하락을 육탄전으로 막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宋鴻兵) 글로벌재경연구원장은 “베이징2환(베이징 중심가)에 있는 (1㎡당) 3만위안(약 540만원)짜리 아파트를 2만위안에 팔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미친 듯이 사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반농담조로 말했다.
그는 “아시아만 금 쇼핑에 조급한 게 아니다. 다만 서구에서는 개인이 줄을 서지 않을 뿐”이라며 스위스가 금 보유량을 강제적으로 늘리기 위한 입법안을 추진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스위스는 최근 최소 자산의 20% 정도를 금으로 보유하도록 해 무분별한 금 매각을 방지하자는 입법청원에 대한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이 법안은 현재 스위스의 현재 금 보유량인 1000t으로는 부족하다며 배로 늘려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희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