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경제=서지혜 기자] #1. 애인과 차 타고 가는 길에 잠깐 내려 길에서 다퉜어요. 기분이 상해 혼자 가겠다고 했더니 데려다 주겠다고 했어요. 이런 기분으로는 같이 갈 수 없어 싫다고 했더니 갑자기 저를 차에 밀어넣더라고요. 그러고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사고가 날까봐 무서웠어요. 애인 성격이 다혈질이지만 때린 적은 없고요. 그 뒤로는 애인만 보면 그 때 생각이 나서 무서워요. 이런 상황도 데이트 폭력인가요.

#2. 만난지 3년 된 애인이 있는데 술만 마시면 전혀 다른 사람이 돼요. 찾아오고, 욕하고, 물건 부수고…. 술이 깨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고요. 술을 끊겠다는 약속을 수십 번도 더 한것 같아요. (한국여성의전화 ‘안녕데이트공작소’ 사례 중)

온 12시30분>데이트폭력에 관대한 사회…폭력에 우는 여친들

연인간 신체적으로 때린 적은 없지만, 난폭운전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행동은 데이트폭력일까. 정답은 ‘Yes’다.

최근 연인간 데이트폭력으로 피해자가 사망하는 등의 사고가 늘고 있다. 특히 진보성향의 논객이나 노동운동가가 여자친구를 폭행했다는 의혹이 연이어 제기되면서, 데이트폭력과 일반폭력을 다르게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연인간 발생하는 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난다. 최근 SNS 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상남자만화’의 경우 데이트 제안을 하는 여성에게 남성이 욕을 하거나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답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통상 마지막 장면은 폭력을 행사한 후 스킨십을 하거나 모텔에 끌고가 폭력을 무마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웹툰이 인기를 끌고 우호적인 반응의 댓글이 있다는 건 사회가 데이트폭력에 얼마나 관대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한다.

실제로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지난 해 20대~30대 미혼남녀 49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의 기준을 묻는질문에 남성은 ‘신체폭력’이 1위를 차지한 반면, 여성은 ‘직접적인 욕설’을 데이트폭력의 기준으로 삼았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에서 이를 ‘연인 간 다툼’ 정도로 가볍게 취급해 피해자를 돕는데 소홀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실패를 반복한 이후에야 법적 대응을 결심하는데,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은 피해사실을 희석하거나 가해자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피해자가 반복되는 폭력을 막기 위해 고소를 했는데, 경찰이 “왜 폭력상황에서 헤어지지 않았냐”며 피해 사실을 의심하기도 해 피해자의 상처를 키우는 경우도 많다.

이화영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은 “신체 폭력이 아닌 스토킹 등 정서적 폭력은 마땅한 증거가 없는 경우도 많아 피해자가 폭력을 당하고 즉각적인 행동을 하기는 쉽지 않고, 모든 대응을 한 후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한다”며 “일반인에게 폭력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행동이 ‘데이트 상황’에서 발생한다면 이 역시 폭력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연인사이에 발생하는 폭력은 모르는 사람에게 당한 폭력보다 더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며 “수사기관이 데이트폭력을 ‘사적인 문제’로 보지 말고 일반적인 폭력과 같이 바라보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