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첫 곡의 첫 기타 리프부터 반갑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록 신의 대세가 모던록으로 정리된 지 오래된 상황에서, 헤비메탈 그것도 정통 헤비메탈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를 만나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밴드 원(WON)은 1998년 결성 이후 16년 동안 단 한순간도 한 눈을 팔지 않고 정통 헤비메탈을 지켜온 몇 안 되는 장인(匠人)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뮤지션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요즘 음악시장에서 철저히 비주류인 정통 헤비메탈로 10년 이상 밴드 활동을 이어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원이 4년 만에 신보인 정규 4집 ‘로커스 매뉴얼(Rocker’s Manual)’을 발표했다. 원의 멤버 리더 손창현(보컬), 김선주(베이스), 지광현(기타), 신능섭(기타), 편장현(드럼)을 지난 24일 서울 서교동의 합주실에서 만나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손창현은 “무조건 앨범을 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생각에 곡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다 보니 4년의 시간이 소요됐다”며 “적지 않은 세월 밴드 활동을 이어온 만큼 밴드의 역사와 나아갈 방향을 수준 높게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번 앨범이 그 결과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앨범에는 밴드 제로-지(Zero-G)의 보컬 김병삼이 피처링으로 참여해 손창현과 선명한 보컬 대비의 매력을 들려주는 타이틀곡 ‘나는 말한다’를 비롯해 노력 없이 우연의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을 담은 ‘맥시멈 스피드(Maximum Speed)’, 유기견의 시점에서 버려진 아픔을 노래한 ‘사라진 날’, 밴드 바스켓 노트의 기타리스트 유병열이 선물한 서정적인 슬로우록 ‘잃어버린 꿈…사랑’, 80년대 ‘뉴 웨이브 오브 브리티시 헤비메탈(NWOBHM)’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도입부와 보컬이 인상적인 ‘로커스 매뉴얼’ 등 9곡이 실려 있다.

손창현은 “정통 헤비메탈 사운드의 뼈대를 유지하되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을 듣지 않기 위해 각 악절의 고리마다 편곡ㆍ가사ㆍ멜로디의 타이밍에 다양한 변화를 줬다”며 “헤비메탈 앨범 작업에선 드물게 보컬의 볼륨을 높이는 등 세련된 최신 가요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말했다. 지광현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기존의 틀을 유지하면서 대중적인 요소를 가미하느냐였다”며 “사운드적인 면에서 결코 과거의 음악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믹싱과 마스터링 과정에서 세련된 톤을 만들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신능섭은 “이전보다 부드러워진 사운드에 대중적인 가사가 특징”이라며 “헤비메탈에 익숙하지 않은 청자들도 다가가기 쉬운 앨범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록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의미를 가진 ‘로커스 매뉴얼’이란 앨범의 타이틀이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강렬하면서도 직설적인 타이틀의 의미에 대해 손창현은 “로커로서 살아남으려면 욕심과 미련, 그리고 일말의 기대를 버려야 한다. 동년배의 누군가와 삶의 질을 비교하는 순간 음악을 붙들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며 “무대 위에 없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세상은 바뀌어가고 있지만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헤비메탈이라는 간절함과 절실함이 깃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원은 지금까지 1200회 이상 라이브를 펼쳐온 공연계의 베테랑이다. 원이 지난 1999년 별다른 홍보 없이 데뷔 앨범 ‘록 콤플렉스(Rock Complex)’로 2만 5000여 장의 판매고를 올릴 수 있었던 것도 공연 덕분이었다. 원이 국내 공연장에서 뿜어냈던 강렬한 에너지는 조만간 해외로 이어질 전망이다.

밴드 원 “헤비메탈도 최신가요처럼 즐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손창현은 “일본 헤비메탈 전문 레이블인 하울링 불(Howling Bull)과 억셉트(Accept)ㆍ아모피스(Amorphis)ㆍ에드가이(Edguy)ㆍ엑소더스(Exodus)ㆍ헬로윈(Helloween)ㆍ테스타멘트(Testament) 등의 앨범을 발매한 독일의 누클리어 블래스트(Nuclear Blast), 영국의 인디 레이블들이 이번 앨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세부 계약 조항과 현지 투어에 대한 협의만 남아 있는 상태”라며 “특히 유럽 쪽에서 앨범 수준의 사운드를 라이브로 들려줄 수 있는지 문의하는 등 우리의 음악에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어 올 가을이나 겨울 쯤 현지 투어가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은 다음 달 10일 광주 하멜아트홀에서 열리는 ‘메탈 페스트’ 무대에 오를 예정이며, 올 여름 부산에서 열리는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출연도 협의 중이다. 손창현은 “‘새로운 것의 승리(Win of New)’라는 의미를 가진 밴드명 원(WON)처럼 앞으로도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헤비메탈에 끊임없이 변화구를 주며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싶다”며 “1만 원 티켓으로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에게 10만 원 이상의 감동을 주는 것이 목표다. 흘려듣지 않도록 단단하게 만든 앨범인 만큼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밴드 원 “헤비메탈도 최신가요처럼 즐길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