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유승훈·이상준 서울과기대 교수 연구용역
탄소중립지원예산, EU 943억·한국129억달러
업종별 감축비용 및 거시경제효과 종합 검토돼야
美대선 등 향후 동향 고려한 유연한 접근 필요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한국의 탄소중립 지원정책 예산 규모가 주요국 대비 최대 7분의 1 수준으로 부족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가 차원의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한 규제 완화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유승훈,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이하 연구진)에게 의뢰한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설정 제언’ 연구용역 보고서를 통해 27일 4가지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산업정책에 배정된 예산 규모가 유럽연합과 최대 7.3배의 격차가 난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의 연평균 탄소중립지원예산은 943억달러, 미국은 369억달러인데 반해 한국은 129억달러에 불과했다. 한국형 정책을 마련하고 국가 차원의 재정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선진국의 탄소중립 지원정책은 기술 R&D부터 상용화까지 전(全) 과정에 맞춤형 지원이 구성돼 있다”며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투자 환경과 관련된 인력, 규제 완화 등 전체적 접근(holistic approach)에 의한 정책을 고안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종별 온실가스 감축비용과 거시경제 효과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선결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산업부문은 다양한 세부 업종으로 구성되며 업종별 온실가스 배출구조가 상이해 부문별 전문가의 평가를 통해 감축수단의 실현 가능성과 비용 효과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NDC와 탄소중립을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결정에 따른 하향식 법제화와 예산에 대한 논의가 누락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또한 주요국은 예산 책정과 법안 논의가 동시에 이뤄지는데 반해, 한국은 예산에 대한 논의과정 없이 탄소중립 경로를 법제화한 점도 개선 과제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재원 확보 이후 입법을 추진하고 수입과 투자의 규모 및 항목을 세부적으로 제시해 법의 실질적인 효력을 확보했다. 한국 역시 재정 지출과 관련된 정책을 추진할 때 재원 확보를 위한 대책을 함께 검토하도록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보고서는 ▷주요국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달성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점 ▷국제정치 변동에 따라 중요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향후 동향을 주시하며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봤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前 미국 대통령 재선에 따른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기조의 변동성이 예상된다.
연구진은 “선진국은 탄소중립 관련 기술 및 시장을 선점하고 자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저탄소 혁신에 대한 제도를 마련하기 전 성급한 NDC 조정은 산업계에 충분한 시그널을 주기보다 감축비용을 상승시켜 투자 여력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편, 보고서는 한국의 다배출업종(철강, 화학, 시멘트, 반도체‧디스플레이)의 저탄소기술이 2035년까지 상용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에서 발간한 ‘탄소중립 기술혁신 전략 단계별 이행안(로드맵)’에 따르면 이들 업종의 저탄소기술 상용화 시점은 2030~40년으로 추정되지만, 기술의 고착효과(lock-in effect)를 고려할 때 저탄소기술이 등장해도 주류화된 기술시스템이 당분간 지속되는 ‘계단식 기술전환’이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2년에 이어 2년 연속 감소했다. 노후 고로 폐쇄(철강), 보일러 연료전환(정유), 불소처리 증가(반도체) 등 체질 개선 노력이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평가된다.
보고서는 이 같은 산업계의 노력으로 주요국 대비 높은 배출원단위 개선율을 달성했지만, 반대급부로 저감수단의 선택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국내 제조업의 온실가스 배출원단위 개선율은 제조업 비중 유사국과 비교할 때 높은 수준으로, 온실가스 감축 선택지가 제한돼 산업계에 상당한 비용 인상을 유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