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공장 매각 등 사업 재편을 유도하고 고부가·친환경 분야로의 진출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중국발 과잉 공급과 탄핵 정국으로 벼랑 끝에 놓인 석유화학, 철강, 항공, 이차전지 등 주력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신호탄’을 쏘아 올린 셈이다.
대책의 핵심은 석유화학 기업의 사업 매각 및 인수합병(M&A) 등 자발적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업재편 기업의 경우 지주회사 지분 100% 매입을 위한 규제 유예 기간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늘린다. 매수자가 수익이 발생한 이후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겠단 취지다. 사업 매각·합작법인 설립·신사업 M&A 시 기업결합심사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전 컨설팅을 적극 지원한다. 유동성 해소와 사업 전환을 위해 3조원 규모의 정책금융도 지원한다. 설비투자·연구개발(R&D)·운영자금 등에 대해 현행 금리보다 1%포인트 이상 낮은 저리로 대출을 지원하는 식이다. 사업재편 시에는 산업은행을 통해 1조원 규모의 사업 구조 전환지원자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의 이런 대책은 중국·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석유화학 설비가 급증하며 국내 산업에 전례 없는 위기가 찾아와서다.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로 LG화학, 롯데케미칼 등 주요 업체 7곳의 1∼9월 누적 영업이익은 1조5533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대비 반 토막 났다.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원유만 팔던 중동 산유국들까지 석유화학 산업에 뛰어들면서 업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중동 에너지 기업들은 원유에서 바로 에틸렌을 생산하는 기술(COTC)을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나프타를 거쳐 에틸렌을 만드는 한국 기업으로선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
한때 한국 수출 품목 5위를 차지할 정도로 효자 산업이었던 석유화학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은 체질개선의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석유화학 설비는 2010년 대비 70% 늘었다. 같은 기간 일본은 15%, 서유럽은 9% 석유화학 설비를 줄인 것과 정반대의 행보다. 더구나 유럽은 바이오와 특수가스, 일본은 전자소재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한 반면 한국은 나프타분해설비(NCC)로 대표되는 범용 제품 생산에 집중했다. 결국 앞으로의 살길은 고부가가치 사업 중심으로의 빅딜에 있다. 지금은 정부가 ‘기업 자율’이라는 미명아래 대규모 구조조정 결단을 업계에 미룰 정도로 한가한 때가 아니다. 2016년에도 자율조정에 맡겼다가 실패했다. 체질개선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시장 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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