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이재명 대통령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을 한 국회 모습은 한심했다. 여당은 박수치는 기계로 전락했고, 야당은 본회의장을 텅 비운 채 ‘피켓정치’에 매몰됐다. 대통령의 22분 연설 동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30여차례의 박수로 응답했고, 입·퇴장 때도 환성과 이름 연호로 열광했다. 본회의장 한쪽 3분의 1가량 의석이 빈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추경호 전 원내대표의 내란특검 수사 및 구속영장 청구에 항의해 시정연설을 보이콧하고 본회의장 밖 로텐더홀에서 검은 마스크를 쓰고 피켓 시위를 했다. ‘침묵 규탄대회’를 표방했지만, 이 대통령이 입장하는 길에선 큰 소리로 막말을 했다. 문제는 박수세례와 피켓시위가 아니라, 지금 여야 정치의 수준이 고작, 오로지, 그것 밖에는 없다는 데 있다.
‘의회 실종’과 ‘협치 불능’의 더 큰 책임은 두말 할 것 없이 거대 여당에 있다. 정청래 대표 취임 이후, 특히 최근 이 대통령의 중요 정상 외교 일정이 있을 때마다 ‘사법개혁’ 관련 이슈로 야당 및 사법부와 충돌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여당이 오히려 이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덮고 갉아먹는다는 비판이 거세다고 하는데 본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초당적인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여당이 먼저 협치 가능성을 걷어차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폐막하자마자 ‘재판중지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가 대통령실의 공개적인 반대로 철회했다. 당지도부가 경중과 선후를 못 가리니, 의제와 당정관계 설정에 문제가 심각하다.
국민의힘은 명분과 분별 잃은 대(對)정부, 대여 투쟁에 빠져 있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이제 전쟁”이라며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모든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했다. “이번이 이 대통령 마지막 시정연설이 돼야 한다”라고도 했다. 내란특검의 수사와 추 전 원내대표의 구속영장 청구, 여당의 ‘정당 해산’ 엄포에 대한 위기감의 반영이지만, 정부에 대한 무조건 반대와 이 대통령 지지율 끌어내리기로 정권교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정책 경쟁으로 수권능력을 입증하지 않으면 보수정당으로서 재정립할 수 없다.
여당은 정부를 지원하고 보완하고 견제해야 한다. 모자란 건 받쳐주고, 잘못된 건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처럼 내내 헛다리 짚다가 박수기계 노릇만 해선 안된다. 야당은 한미 관세협상의 후속조치와 기업지원·규제혁신, 전작권 전환, 핵추진 잠수함 건조 등 정부의 통상·경제·외교·안보정책에 대한 보수정당으로서의 대안을 확실히 내놓아야 한다. 국회의 입법과제가 산적하다. 여야 모두 ‘제 할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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