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銀, 알림 서비스 연말 시행 목표

계좌 명의자·가족, 사전에 신청해야

172조원 ‘치매 머니’ 보호 대응 강화

#. 86세 김덕수(가명) 씨는 지난해 6월 검사를 사칭한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남성은 “은행 직원이 개인정보를 도용해 신용카드를 만들었다”며 “예금을 빼돌릴 수 있으니 전액 인출해 맡기라”고 했다.

평생 모은 돈을 잃을 수 있다는 말에 김씨는 은행에서 예금 1600여만원을 찾아 가방에 담았다. 이어 남성이 지시한 대로 아파트 1층 우편함 앞에 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가방을 가져갔다. 전형적인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이었다.

앞으로 치매환자나 고령층이 일정 규모 이상의 예금을 인출하면 은행이 사전에 지정된 가족에게 이를 알려주는 방안이 추진된다. 이른바 ‘치매머니’와 고령층을 노린 사기 범죄가 잇따르면서 금융당국이 새로운 예방책을 마련한 것이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은행 등 국내 5대 은행은 이르면 연말 시행을 목표로 ‘고령층·치매환자 알림서비스’를 준비 하고 있다. 서비스 대상은 65세 이상 고령자나 후견인이 있는 치매환자다. 이들이 일정금액 이상의 예금을 인출하면 미리 지정한 가족에게 출금 사실이 통보된다. 단기간에 반복적으로 예금이 인출되는 경우 등 은행 FDS에서 이상거래로 탐지된 사실이 있을 때는 이 내용도 함께 통보할 예정이다.

다만 알림서비스는 신청자에 한해서만 제공된다. 계좌 명의자 본인과 가족이 사전에 은행에 예금 인출 사실을 고지받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서비스 대상이 된다.

금융실명법 등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계좌 명의인의 동의를 받아 제3자에게 금융거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다만 명의인의 동의 효력이 개별 거래 건에 한정되는지, 전체 거래에 대한 포괄적인 동의까지 포함하는지는 법리적으로 불분명한 상황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해당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혁신적인 금융서비스에 대해 일정 기간 기존 규제 적용을 유예하거나 특례를 부여하는 제도다. 5대 은행은 이달 말까지 금융당국에 샌드박스 신청 서류를 제출할 예정이다.

명의자의 예금 인출 사실을 가족이 즉시 알아챌 수 있는 만큼, 치매환자나 고령층의 자산을 노리는 보이스피싱 피해는 이전보다 큰폭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알림을 토대로 명의자와 가족이 보이스피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경우 명의자가 은행에 입금 계좌에 대한 지급 정지를 요청해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치매환자의 자산을 말하는 ‘치매머니’ 보호는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 연말 기준 치매머니 규모는 172조원 수준이며, 치매 환자가 아닌 고령층의 재산 규모까지 합치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노린 보이스피싱 사기도 들끓고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알림서비스도 국정과제 후속조치 일환으로 풀이된다.

실제 최근의 보이스피싱 피해도 고령층에 집중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 보이스피해 9788건 중 60대 이상 고령층 비중이 40%로 집계됐다.

이중 투자리딩방 등 투자를 빙자한 ‘투자사기형’ 피싱은 전체 6769건 중 42%가 60대 이상 노년층이 피해자였다. 김 씨와 같이 기관 사칭형의 경우 1140건 중 32.8%가 노년층이었다. 서상혁 기자


hyu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