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승 삼성전자 고문 기조연설
용인·이천·전남광주팹 투자 모두 속도내야
공급 안정화되면 가격 변동은 해소될 문제
반도체, 인간 상상력을 구현하는 핵심 기술
삼성, 수차례 ‘변곡점’ 돌파해 세계 1등 등극
“인구 320만 전남광주가 인구 1800만명이 사는 중국 빅테크 거점인 선전처럼 변할 수 있습니다. 30년 후 그런 도시를 만들기 위해선 반도체 산업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정은승 삼성전자 고문은 29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헤럴드 기업포럼 2026’에서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반도체 산업 육성 구상을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진출에 빗대어 설명했다. 가능성이 확인된 사업에 뛰어드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위한 변곡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고문은 지난 6월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당선 후 인수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로 인해 서남권 투자 구상이 구체화되면서 전남광주반도체전략위원장으로 일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정 고문은 “주로 대학총장이 가는 인수위원장 자리에 왜 저를 부르는지 민형배 시장에게 물었더니 대한민국의 산업 성장을 이끈 반도체와 같은 일을 전남광주에서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특히 반도체 없이는 이제 모든 것이 불가능한 산업 구조를 고려해 전남광주를 비롯한 모든 지역에서 반도체 투자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정 고문은 “엔비디아가 만드는 GPU(그래픽처리장치)가 비싼 건 여전히 AI 회사가 원하는 물량의 60~70%만 공급이 이뤄지고 있을 정도로 공급 부족이 심하기 때문”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만드는 HBM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용인, 이천, 전남광주 모두 빨리 공장을 지으라고 말한다”고 강조했다.
가격 변동 역시 공급이 안정화되면 해소될 문제라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은 양이 모자라서 가격이 뛰고, 많이 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은 출렁거린다”며 공급 기반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 고문은 반도체를 인간의 상상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예로 들었다. 1968년 개봉한 영화에 AI 기술은 물론 영상통화와 태블릿PC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등장했는데 당시의 상상이 오늘날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정 고문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다”며 반도체 기술이 그 바탕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한국 기업들이 확보한 위치를 새로운 기회로 봤다. 정 고문은 “우리가 메모리를 해냈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며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고문이 발표에서 여러 차례 꺼낸 말은 ‘변곡점’이었다. 그는 삼성전자가 처음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던 시기를 돌아보며 “세상에 있는 기회라는 건 없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찾아내고 만드는 게 변곡점”이라고 했다. 이어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때도 아무도 몰랐다”며 지금의 산업 경쟁력 역시 기존 시장을 따라가는 데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기술 개발에서도 같은 방식이 통했다고 말했다. 정 고문은 웨이퍼 크기를 키우고 낸드플래시를 평면에서 3차원 구조로 바꾸는 등의 시도를 거론했다.
그는 3차원 낸드에 대해 “물질 혁신과 구조 혁신, 집적 기술의 혁신이 함께 들어갔다”며 오랜 연구 끝에 만들어낸 기술의 변곡점이라고 평가했다.
앞으로는 개별 반도체를 잘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진단도 내놨다. 정 고문은 “단품을 파는 단계에서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나 HBM(고대역폭메모리)처럼 합쳐서 파는 단계로 왔다”며 메모리와 파운드리, 패키징을 연결하는 영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반도체가 제공하는 가치를 높이는 방향도 과제로 제시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조건으로는 협력과 신뢰를 들었다. 정 고문은 과거 글로벌 기업과 함께 기술을 개발했던 경험을 소개하며 “신뢰라는 게 비즈니스에서 그렇게 무서운 말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함께 개발하는 상대가 어려울 때도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는 취지다.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협업한 일화도 소개했다. 정 고문은 “과거 엔비디아의 8나노 GPU 생산을 삼성전자가 맡기로 할 때 당시 마케팅 담당 임원이 젠슨 황 CEO에게 ‘우린 같은 배를 탔다’고 말하니 젠슨 황 CEO가 화를 냈다”며 “같은 배를 탄 거면 위험할 때 헤엄쳐 나갈 수 있다는 것 아니냐. 우린 같은 우주선에 탔다”고 사업에서 절박함을 강조했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배운 조직 문화도 소개했다. “큰 목표를 가져라”, “지나칠 정도로 정성을 다하라”, “무엇이든 숫자로 파악하라”는 말들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되새겼다고 했다. 정 고문은 “정성을 다하면 팀원들이 감동하고, 그 힘으로 큰일을 해결했다”며 “안 된다고만 하는 사람과 얘기하지 말라. 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되는 아이디어를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이정완 기자
jeongw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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