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미국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인공지능(AI) 투자 대상이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엔비디아 등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에 집중됐던 투자는 전력·냉각·로봇·반도체 제조 등으로 세분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AI를 직접 개발하는 기업뿐 아니라 AI를 활용해 비용을 줄이고 매출을 늘리는 기업을 겨냥한 ETF까지 등장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지난 9월 내놓은 ‘iShares Future AI Beneficiaries ETF(AIBF)’는 이런 변화를 보여주는 상품이다. 블랙록은 6월 말 기준 15조3000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AIBF는 AI 기술기업만 담지 않고 월마트·일라이 릴리·애브비·존슨앤드존슨·GE에어로스페이스 등 전통 산업 기업을 주요 종목으로 편입했다. 세계 최대 운용사가 AI 수혜 범위를 ‘AI를 만드는 기업’에서 ‘AI를 활용하는 기업’까지 넓혀 본 것이다.
AIBF는 AI를 활용해 비용을 줄이거나 매출을 늘릴 수 있는 미국 기업에 투자한다. 블랙록은 AI가 기업의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가장 중요한 수혜 요인으로 보고, AI를 활용해 매출을 늘리는 효과도 투자 기준에 반영했다. 펀드에는 100개 종목이 담겼다.
실제 포트폴리오를 보면 AIBF의 성격이 더 분명해진다. 월마트가 4.0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코스트코 3.85%, 일라이 릴리 3.80%, 애브비 3.80%, 존슨앤드존슨 3.63%, 팔로알토 네트웍스 3.19%, 코카콜라 3.15%, GE에어로스페이스 3.08%, 메타 2.43% 등이 주요 종목이다. AI ETF에서 흔히 떠올리는 반도체 기업과는 투자 대상이 상당히 다르다.
업종 구성도 AIBF가 기존 AI ETF와 다른 이유를 보여준다. 헬스케어와 필수소비재, 산업재 비중이 높고 정보기술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AI 기술을 직접 판매하는 기업보다 AI를 활용해 기존 사업의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는 기업을 넓게 담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ETF 시장에서는 AI 투자 대상이 한층 더 잘게 나뉘고 있다. AI 반도체에서 시작해 데이터센터의 전력과 냉각, 로봇 부품, AI 산업의 병목 구간, 반도체 제조 등 특정 분야를 겨냥한 상품이 잇따르고 있다. AI라는 큰 테마 하나에 투자하는 대신 AI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느 분야가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따져 투자하는 방식이다.
블랙록은 AI 투자 기회가 반도체·데이터센터 등 인프라를 넘어 실제 산업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AI 기술을 만드는 기업뿐 아니라 AI를 활용해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기업까지 투자 대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블랙록은 이런 AI 투자 기회의 확장을 ‘구축(Build-out)→도입(Adoption)→전환(Transformation)’의 3단계로 설명한다. 반도체·데이터센터·서버 등 AI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서 시작해 기업이 AI를 업무와 제품에 활용하고, 나아가 사업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과정이다. 현재는 AI 인프라 구축에 투자가 집중돼 있지만, AI 활용이 본격화하면 수혜 범위가 전통 산업으로 넓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AIBF는 이 같은 투자 관점에서 출발한 상품이다. AI 기술 자체를 만드는 기업보다 AI를 실제 사업에 활용해 수혜를 얻을 수 있는 기업들을 담았다. 블랙록은 AI가 유통·헬스케어·산업재 등 전통 산업으로 확산되면서 월마트·일라이릴리·GE에어로스페이스 등 기업이 실제 사업에서 수혜를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AI를 온라인 쇼핑과 구매 과정에 활용하고 있다. AI 쇼핑 도우미 ‘스파키(Sparky)’를 이용한 고객의 평균 주문금액은 이용하지 않은 고객보다 약 35% 높았다. 상품 검색과 추천을 넘어 실제 구매 과정에 AI를 적용하면서 매출 확대에도 활용하고 있는 사례다.
미국의 대표적 제약사인 일라이 릴리는 AI를 신약 개발과 의약품 생산에 활용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와 엔비디아는 AI 공동혁신 연구소를 설립하고 5년간 최대 1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신약 후보 물질을 찾는 데 AI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로봇과 물리적 AI를 활용한 의약품 생산까지 연구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항공기 엔진 제조사인 GE에어로스페이스는 AI를 엔진 검사와 정비에 활용하고 있다. AI로 엔진 부품의 이상 여부를 찾아내고 엔진 상태를 분석해 정비가 필요한 시점을 미리 파악한다. AI가 반도체나 소프트웨어 기업의 기술을 넘어 제조 현장의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데 활용되는 사례다.
미국 사이버보안 업체인 팔로알토 네트웍스는 AI 확산으로 커지는 보안 수요를 겨냥하고 있다. AI가 기업 업무에 활용되는 범위가 넓어지면서 AI 시스템과 연결된 보안 문제도 커지고 있다. 팔로알토 네트웍스는 AI 모델을 활용해 기업 시스템의 취약점을 찾아내는 보안 서비스를 선보이며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미국 식품업체 켈러노바는 AI를 활용해 제조 비용을 줄인 사례다. 블랙록에 따르면 켈러노바는 감자칩 품질을 높이기 위해 AI에 400만~500만달러를 투자했고, 품질은 10% 개선되고 폐기물은 13% 줄었다. 블랙록은 투자수익률(ROI)이 40%에 달했다고 소개했다.
월마트부터 일라이 릴리, GE에어로스페이스까지 업종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AI를 직접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기존 사업에 AI를 적용해 비용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거나 새로운 매출 기회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AI에 대한 투자가 AI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과 같은 뜻일까”
제이 제이컵스 블랙록 미국 주식 ETF 부문 총괄은 “AI 투자 기회가 한곳에 집중된 기술 구축에서 더 넓고 점점 실물경제에 가까운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알파벳·메타 등이 데이터센터와 컴퓨팅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한편, 월마트는 AI 쇼핑 도우미로 구매를 늘리고 일라이 릴리는 신약 개발과 생산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AI를 만드는 데 돈을 쓰는 기업과 AI를 활용해 사업의 성과를 만드는 기업을 구별해서 봐야할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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