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연구진과 서울대 포럼서 발언
52시간제 도입 이후 초과급여 6.7%↓
‘한국형 화이트 이그젬션’ 도입 제안
한은 총재 퇴임 후 첫 연구 발표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와 한은 연구진이 연간 총급여 약 8200만원 이상인 관리·전문직 중 업무 자율성이 높은 직무에 대해 주 52시간 상한과 가산수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오삼일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연구팀장은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가 서울대 우석경제관에서 개최한 ‘인구·AI 대전환 시대, 얼마나 어떻게 일할 것인가’ 포럼에서 이런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이번 연구에는 이창용 전 한은 총재(현 서울대 특임교수)도 참여했다.
연구진은 고령화와 AI(인공지능) 확산으로 노동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하루 8시간·주 40시간인 법정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추가 단축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 이후 초과근로시간과 초과급여가 각각 7.7%, 6.7% 감소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소득 1분위 근로자의 초과근로시간과 초과급여가 각각 15.5%, 15.9% 줄어드는 등 소득 감소 충격이 저소득층에 집중됐다.
반면 고소득층에서는 총급여 감소 효과가 유의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1인당 생산성을 유의미하게 높인 효과도 확인되지 않았다. 성과급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1인당 생산성에 미치는 효과가 더 부정적으로 나타나 성과 중심 업무와 획일적인 근로 시간 규제가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에 연구진은 연구개발(R&D)·정보기술(IT)·금융 등 성과 평가가 가능하고 업무 자율성이 높은 직무에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보수를 받는 관리·전문직 등에 대해 연장근로수당 지급 의무 등을 면제하는 제도다.
연구진이 제시한 잠재적 적용 대상은 관리직·전문직·사무직 가운데 연간 총급여가 상용근로자 중위임금의 200%인 약 8200만원 이상인 근로자다. 약 149만명(전체 상용근로자의 10.8%)으로 추산됐다.
다만 연구진은 이 가운데 실제 업무시간과 방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성과 측정이 가능한 직무만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 상한과 연장·야간·휴일근로 가산 수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산 수당을 적용하지 않는 대신 성과에 따른 추가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할 안전장치도 함께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 팀장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산업에 한정하기보다는 직무나 소득, 업무 자율성에 기반해 좀 더 폭넓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법정근로시간 자체를 줄이는 대신 휴가 사용을 활성화해 실질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국내 근로자의 유급휴가 소진율을 현재 75%에서 95%로 높이면 연간 근로시간을 약 31시간, 근무일 기준 약 4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 팀장은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의 일률적인 추가 단축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쉴 때 쉬는 문화를 통해 실질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이날 포럼 토론에서 국내 노동제도가 과거 제조업 성장기에 형성된 블루칼라(생산직) 중심의 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하며 화이트칼라(사무직)에 맞는 별도의 노동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우리나라가 잘살기 위해서는 화이트칼라가 열심히 일해야 할 때”라며 “1억5000만원씩 받는 사람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그게 나라를 이끌어가도록 하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화이트칼라가 열심히 뛰게 하고 본인들이 본인의 건강을 지킬 수 있게 유연성을 줘야 한다”며 “화이트칼라를 블루칼라와 같은 방식으로 관리해서는 나라의 발전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소득층의 소득을 어떻게 보전할지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줄이자고 하면 가운데 있는 노동자만 생각하는 것이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 전 총재는 또한 현행 재량근로제 등으로는 충분한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 52시간제 도입 당시 일부 해외 금융기관이 국내 인력을 축소하고 관련 업무를 해외로 이전한 사례를 들며, 노사 합의 이후에도 장시간 근로를 둘러싼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그런 법적인 위험을 두고 한국에서 고급·고액 근로자를 고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kimsta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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