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매출액 44조원…과징금 부과 의견
4년간 입금가·확정가·판매정책 주고받아
두 회사 시장점유율 49%…경쟁제한 판단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국내 정유시장 점유율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가 국제유가가 크게 출렁인 약 4년 동안 휘발유·경유·등유 가격 정보를 주고받은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심판대에 올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격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교환하고 미국-이란 전쟁 이후에는 판매가격까지 합의했다는 의혹이다.
공정위 사무처는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의 휘발유·경유·등유 담합 혐의에 대한 조사 결과와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하고 피심인 측에도 전달했다고 7일 밝혔다.
심사보고서 제출은 사무처 조사를 마치고 위원회의 본격적인 심의 단계로 넘어갔다는 의미다.
공정위 심사관은 두 정유사가 2022년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약 4년에 걸쳐 석유제품의 입금가와 확정가, 판매정책 등 가격 결정에 관련된 정보를 서로 교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이란 전쟁 이후에는 입금가를 두 차례에 걸쳐 명시적으로 합의한 혐의도 심사보고서에 포함됐다.
정유업계에서는 통상 ‘사후정산제도’를 통해 주유소 등 거래처와 석유제품 가격을 정산한다. 정유사가 먼저 입금가를 정해 제품을 공급하면 다음 달 초 전월 거래분에 적용할 확정가를 결정하고 두 가격의 차이를 사후에 정산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정유사가 결정하는 입금가와 확정가는 주유소의 판매가격을 거쳐 최종 소비자가 부담하는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정유사들은 이와 별도로 일정 기간 가격을 낮추거나 동일한 가격을 유지하는 등의 판매정책도 운용한다.
국내 석유제품 시장은 소수 정유사가 사실상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시장점유율은 SK에너지 28.1%, S-OIL 25.5%, GS칼텍스 23.3%, HD현대오일뱅크 21.0%로 4개 업체의 합계가 약 98%에 이른다.
이 가운데 이번 사건의 조사 대상인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의 점유율을 합치면 49.1%다. GS칼텍스와 S-OIL이 담합에 참여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오행록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전쟁 상황에서 국제유가가 급변한 점이 정보교환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 작용한 것 아닌가 보고 있다”며 “과점 체제이지만 2개 사의 점유율이 50% 정도여서 시장경쟁 질서에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섦명했다.
공정위 심사관이 담합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산한 관련 매출액은 약 44조1000억원이다. 하루 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300억원 규모다. 심사관은 두 회사의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가격담합과 정보교환 금지 규정을 위반한 ‘중대한 위반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앞서 검찰도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의 가격 담합 혐의를 수사해 재판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두 회사 임직원이 공정위 현장조사 일정을 사전에 파악한 뒤 전산자료와 메신저 대화를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오 국장은 “조사 정보 관리가 미흡했는지 (공정위) 감사담당관실에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공정위 내부에서 정보가 유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정유사는 심사보고서 수령일로부터 8주 이내에 서면 의견 제출, 증거 자료의 열람·복사 신청 등 방어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공정위는 관련 절차를 마치는 대로 위원회를 열어 법 위반 여부와 제재 수위를 결정할 계획이다.
두 정유사는 향후 공정위 심의 과정에서 사실관계와 회사 입장을 적극 소명하겠다는 입장이다. SK에너지 측은 “공정위 심사보고서의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향후 전원회의 등 심의 절차에 성실히 임해 사실관계와 회사의 입장을 충실히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회사는 심사보고서 상정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이는 심의 절차의 시작 단계인 만큼 향후 심의 과정에서 사실관계와 법률적 쟁점에 대해 충실히 소명할 것”이라고 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정보교환이 실제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공정위 판단에 대해서는 반박에 나섰다.
이 관계자는 “교환된 모든 정보는 이미 시장에 공개됐거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확인 가능한 사후 정보로, 회사의 가격 및 판매정책 결정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며 “공정위가 미국-이란 전쟁 이후 입금가를 담합했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해서는 경쟁사 관계자의 일방적인 진술에 기초한 것일 뿐 담합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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