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재경부 전략경제자문단 위원장 도쿄 인터뷰
메모리 반도체 넘어 AI 산업 전반 경쟁력 확보 강조
부처 칸막이 해소·중기 AI 지원·국민활용 교육 제안
[헤럴드경제(도쿄)=송원서 기자] 박영선 재정경제부 전략경제자문단 위원장이 한일 인공지능(AI) 협력의 출발점으로 제조·의료 데이터 표준화를 제안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6일 일본 도쿄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양국이 축적한 데이터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데이터는 각자의 노하우가 담긴 기본 자산이기 때문에 공개하거나 서로 교환하기 어렵다”며 “그렇더라도 데이터의 표준을 함께 만드는 일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국이 데이터를 자산으로 지키면서도 AI가 이를 활용하는 데 필요한 공통 기준은 함께 마련하자는 구상이다. 양국이 쌓아온 건강검진 데이터도 협력 가능성이 큰 분야로 꼽았다. 이런 분야에서 협력하면 미국과 중국이 미처 주목하지 않은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봤다.
박 위원장은 남편 이원조 변호사와 함께 로펌 디엘에이 파이퍼(DLA Piper) 도쿄사무소 설립 2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찾았다. 이 변호사는 이 로펌의 한국 총괄대표를 맡고 있으며 도쿄사무소 한국데스크도 담당한다. 박 위원장은 “그동안에는 주로 외조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내조하러 왔다”고 방일 계기를 소개했다. 최근 가장 관심을 쏟는 과제로는 AI 시대 한국 경제의 진로를 꼽았다.
그가 한일 협력에 주목하는 이유는 양국의 강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며 각국이 앞선 분야로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양국 정책 담당자들이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도 했다.
일본의 강점으로는 로봇 기술을 들었다. 로봇을 움직이는 구동장치와 센서 등 축적된 기술이 현실에서 움직이며 작업하는 ‘피지컬 AI’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일본이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뒤처진 부분을 AI 시대에 만회하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봤다. 한국 역시 과거 IT 분야의 성공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한국 산업의 과제로는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AI 산업 전반으로 넓히는 일을 제시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가 기회를 가져왔지만 한 분야의 우위만으로는 공급망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박 위원장은 반도체 설계와 제조, 통신, AI 데이터센터, 슈퍼컴퓨터를 아우르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부터 AI 기반 시설까지 산업 생태계를 이끌 수 있어야 ‘AI 3대 강국’이라는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시장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봤다. AI 기반 시설이 필요하지만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쪽에 의존하고 싶지 않은 국가에 한국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들 국가에 AI 시스템을 일괄 구축해 줄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대로 AI 기반 시설의 격차가 국가 간 종속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했다. 이를 ‘디지털 식민지화’라고 표현한 그는 한국이 이 변화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전략을 실행하려면 정부의 일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부처별 기본 예산은 유지하되 여러 부처가 참여하는 사업에는 부처의 경계를 넘어 예산을 배분하자는 제안이다.
조직도 사람과 AI 에이전트가 함께 일하는 방식에 맞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에이전트는 주어진 목표에 따라 필요한 작업을 수행하는 AI다. 이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려면 부처와 부서의 칸막이를 낮추고 수평적인 협업을 늘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우선 추진할 과제로는 ‘K-온톨로지 프로젝트’를 꼽았다. 온톨로지는 데이터에 담긴 개념과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방식이다. AI가 데이터의 의미와 업무 맥락을 이해하도록 제조·의료 등의 분야에서 기반을 마련하자는 구상이다.
AI 주권의 핵심도 데이터에서 찾았다. 데이터를 보유하는 데서 나아가 AI가 이해하고 활용하도록 만드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했다. AI를 가동할 충분한 전력도 필수 조건으로 들었다. 의료 데이터 활용에는 개인의 동의 문제가 따르는 만큼, 건강관리 등에서 당사자가 활용 가치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는 AI 에이전트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AI 에이전트와 얼마나 잘 협업하느냐가 지금 가장 큰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개별 사업자가 혼자 힘으로 AI를 도입하고 활용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데이터 표준을 마련하고, 이들이 이용할 AI 에이전트 플랫폼의 구축과 운영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민의 일상으로 AI 활용을 넓히는 방안으로는 교육을 들었다. 그는 “코딩을 몰라도 AI를 쓸 수 있다”며 “국민 모두가 AI 에이전트를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자 자신의 비서를 하나씩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컴퓨터 보급기에 사용법을 가르쳤듯 AI를 배울 기회도 넓혀야 한다는 취지다. 기술과 사용법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국민의 학습을 돕는 ‘AI 튜터’를 마련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박 위원장은 “누가 먼저 시작하고, 누가 먼저 성공하느냐가 중요하다”며 “크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작은 것부터 시작해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wss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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