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공은태 역
데뷔 20년만 첫 원톱…4주 연속 구독 1위
차기작 오컬트 ‘각성’…“공양하는 마음”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하루하루가 ‘매출 전쟁’인 대형 패션 회사. 5개 영업팀에 5명의 팀장이 있지만, 다 같은 팀장이 아니다. 연차 높은 팀장에게 승진, 매출, 인력 ‘몰아주기’와 ‘밀어주기’를 하는 이곳의 ‘막내 팀장’이 바로 공은태다. 치솟는 화도, 하고 싶은 말도 삼키고, 오로지 ‘일’로만 자기를 증명하는 타입. 그런 공은태가 달라졌다. 거스름돈이 없는 편의점에서 ‘강매’당한 로또가 1등에 당첨되면서다. 손에 쥔 돈은 13억원. 요즘 같은 때엔 서울 강남 3구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지만, 통장에 찍힌 당첨금의 숫자는 비루한 직장인의 ‘삶의 태도’를 바꾼 트리거다.
“드라마에선 그 과정을 단축해서 보여준 것 같아요. 현실에선 행복을 찾아가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니까요.”
최근 서울 종로에서 기자들과 만난 배우 이준혁(42)은 ‘공은태의 여정’을 이렇게 봤다. 그가 말한 ‘과정’은 공은태가 자기 자리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드라마는 ‘로또 1등‘이라는 행운으로 그 길을 앞당겼지만, 이준혁은 로또가 없었더라도 공은태는 결국 자기 길을 찾았을 인물이라고 봤다. “은태라면 어떤 방향으로든 방법을 찾아 나갔을 거예요.”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티빙 시리즈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가 주말·주간 구독 기여 1위를 지키며 막을 내렸다. 일본 디즈니+ 드라마 순위에서도 정상에 올랐고, tvN 월화드라마로도 방송돼 지난 5일 5.9%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준혁에게 이 작품은 남다르다. 2007년 KBS 단막극으로 연기를 시작해 20년만에 ‘원톱’ 주인공으로 선 드라마다. 앞서 티빙 ‘좋거나 나쁜 동재’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적은 있었으나, 이는 ‘비밀의 숲’의 세계관 안에서 태어난 스핀오프(spin off, 파생작)였다.
사실 이 작품도 길이 쉽게 열리지는 않았다. 그는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의 제작이 확정되기까지 대본이 여러 차례 반려됐다고 들었다”며 “내가 히트작이 많은 것도 아니니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담담히 돌아봤다.
오랜 조연 생활에서 그가 그려온 주인공의 모습이 있었다. 이준혁은 “주인공을 하게 된다면 많은 이들이 주연처럼 활약하는 작품을 꼭 하고 싶었다”고 했다. 드라마에선 이준혁의 바람이 이뤄졌다. 영업5팀 배우들이 하나같이 돋보였다. 그는 “이 작품으로 많은 배우가 주목받길 원했는데, 실제로 이뤄졌을 때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었다”며 웃었다.
극 중 공은태는 팀장으로서 힘이 생겼을 때, 팀원들에게 기회를 나눈다. 이준혁은 그 모습을 현실에서 실천했다. “‘좋거나 나쁜 동재’ 제작발표회 때는 신인 배우들이 참석을 못 했어요. 이번엔 제가 조금 힘이 생겨서 다 함께 나갈 수 있었죠.”
이준혁이 연기한 공은태는 조용한 사람이다. 그의 히트작 중 하나인 ‘비밀의 숲’ 서동재와는 정반대다. 공은태는 상대의 에너지와 장면의 리듬에 맞춰 작게 움직인다. 이준혁은 그런 공은태를 합주의 베이스에 견줬다. 앞에 나서지 않지만 중심을 잡고, 이따금 한 번씩 찔러 줘야 전체 소리가 산다는 것이다. 목소리를 키우면 장면을 쉽게 채울 수 있지만, 작게 움직이면 대사 한 줄 한 줄에 온 신경을 모아야 한다. 촬영 내내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긴장을 풀어 준 건 현장의 합이었다.
“함께하는 배우와 저의 리듬이 맞고, 그걸 담는 카메라의 무빙, 조명, 감독님의 디렉션까지 맞아떨어질 때의 희열이 있었어요.”
그는 이 순간을 재즈에 비유했다. 악보에 묶이지 않고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받아치는 음악, 혼자 앞서 나가는 독주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소리를 쌓는 합주다.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는 그에게 이런 작품이었다.
가장 든든한 짝은 서현우였다. 서현우는 공은태보다 나이가 많지만 그의 팀에서 일하는 대리 양준호를 연기했다. 이준혁은 “나중엔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처럼 리듬이 맞았다”고 회상했다. “제가 어떤 방향으로 가든 형이 맞춰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이 작품에선 저보다 형에 대한 반응이 좋을 때가 더 기분이 좋더라고요.”
직장생활이라곤 해본 적도 없지만, 이준혁에게 공은태의 하루는 낯설지 않았다. 친구들에게 듣는 직장 이야기가 연예계와 똑 닮아서다. “팀 호흡이 잘 맞아서 일이 잘될 때도 있고, 때로는 나대 봐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저항해야 할 때도 있는 게 너무 비슷하더라고요.”
막내 팀장 공은태가 연차 많은 양준호의 상사가 되는 설정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만큼 나이랑 상관없이 직급이 바뀌는 직업이 없다”며 “‘우리 일이랑 똑같다’고 느끼면서 크게 몰입했다”고 짚었다.
촬영하는 동안 그는 공은태의 마음을 알고 싶어 매주 로또를 샀다. 행운은 작품으로 와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엔 살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손에 쥔 당첨금은 5000원뿐이었지만, 사실 그가 기다리는 행운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다.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이다. 시청률이 높아도, 큰 인기를 얻어도, 설령 로또 1등에 당첨된다 해도 이준혁의 삶은 제자리를 지킨다. 그는 “결국 다시 일하러 간다”며 “좋은 일이 있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점이 공은태와 닮았다”고 했다. 드라마는 이토록 “평범한 직장 생활이 얼마나 멋진지를 이야기한 작품”이라고 그는 돌아봤다.
차기작은 이미 정해졌다. 내년 초 방송하는 SBS 오컬트 드라마 ‘각성’이다. 회사원의 양복을 벗고 사제복을 입는다. 이준혁은 “레퍼런스가 될 만한 작품이 없어서 우리가 그런 작품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며 “공양하는 마음으로 나를 갈아 넣고 있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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