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자들은 자국민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대신에 정복한 땅의 피정복민을 동원하여 이웃을 침략한 사례가 적지 않다. 이들의 강압으로 전쟁에 동원되어서 인근 국가와 전쟁을 벌인 피정복국은 제국이 소멸한 이후에도 수 세기에 걸쳐 그 후유증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13세기의 정복왕조 몽골제국은 유라시아대륙을 휩쓸어 세력 확장에 나서며 복속시킨 피정복민을 전쟁에 강제 동원하는 수법으로 영토를 넓힌 대표적인 왕조였다. 이번 회에는 몽골의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가 정복한 한반도의 고려인과 만주 지역의 여진족을 앞장세워 1274년과 1281년의 두 차례에 걸쳐 벌인 일본 침공 내막과 이 때문에 생긴 일본인의 반한 감정에 관해 소개하겠다.
삼별초, 가마쿠라 막부에 몽골군의 일본 침공 계획을 알려와
1271년 9월 어느 날, 일본 규슈 하카타에 고려 사신이란 자가 찾아와 고려가 일본 조정에 보내는 것이라며 서한 한 통을 전달했다. 서한에는 조만간 몽골 군대가 일본을 침공할 계획이며 자신들은 강화도에서 진도로 천도해서 삼한 지방을 통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고려에 군대를 파견해 줄 것과 군량미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서한은 이전에 몽골과의 통교 권유와 일본의 복속을 요구하는 고려와 몽골 측이 보내온 것과 전혀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외교를 관장하는 황실 조정에 분석시킨 결과, 이는 고려 왕조에 반란을 일으켜 진도에 거점을 두고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고 있던 반몽골 무장 투쟁 세력인 삼별초가 보낸 것으로 판명되었다.
삼별초는 1231년부터 30여 년 동안 몽골의 고려 침공에 맞서 반몽골 투쟁을 전개해 온 군사 조직이었다. 친몽골 성향의 고려왕 원종이 1270년, 삼별초 해산 명령을 내리자 배중손 등이 이에 반발하며 반란을 일으켜 진도와 제주도 등지에서 저항하다가 몽골군이 주축이 된 고려·몽골연합군의 토벌로 1273년 궤멸했다(‘삼별초의 난’). 일본 정벌을 추진하던 쿠빌라이는 남해안 일대 해역을 장악하며 일본으로 통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던 삼별초 세력이 제거되자 이듬해인 1274년 일본 침공을 감행했다.
일본, 몽골침공에 대비해 무사들에게 총동원령 발동
가마쿠라 막부는 몽골과 고려 측이 보낸 서한에 대해 철저하게 무시하는 전략을 취하는 한편 삼별초가 보내온 서한 등에서 얻는 정보를 토대로 몽골의 일본 침공이 현실화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무사 동원령을 발동했다. 막부의 집권자, 호조 도키무네는 규슈 일대에 영지를 소유한 무사들을 소집하여 이 지역의 불량자 무리를 진압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해안선 일대를 경비하는 부대를 창설하고 막부 방침에 이견을 보이는 이복형을 숙청하는 등 내부 통제도 강화했다. 천황을 양위하고 2선에 물러나 있던 가메야마 상황은 전국의 사찰에 외적 퇴치 기도를 올리도록 독려하며 몽골침공에 대비한 만반의 응전태세를 갖춰놓았다.
쿠빌라이의 청구서 ‘일본파병’
중국 대륙 통일의 야심을 품은 쿠빌라이는 중국 남부에 기반을 둔 남송 정복이 최종 목표였다. 그러나 일본이 남송과 활발하게 교역하면서 화약의 원료인 유황을 수출하자 일본과 남송의 연계를 차단하기 위해 일본 침공을 계획하였다. 이때 고려는 일본 침공의 교두보이며 제주도를 비롯한 한반도 남해안은 일본과 남송의 무역 해상로였기 때문에 전략적 요충지였다.
따라서 쿠빌라이는, 무신 세력에게 포위되어 실추된 고려 왕권이 회복하는 데 개입하고 원종의 즉위 및 자기 딸인 제국공주의와 원종 세자 심(충렬왕)과의 혼인 등 고려 왕실에 각종 시혜를 베풀었다. 이에 대해 원종은 “성은이 하늘같이 크니 그 은혜를 갚을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고 그의 아들 충렬왕은 일본 침공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약조했다. 쿠빌라이는 이런 고려왕들의 약조를 근거로 고려군의 ‘일본파병 청구서’를 내밀며, “우리는 이미 한 집안이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남송이든 일본이든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군사, 마필, 전함, 군량을 빨리 조달하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그의 명령에 따라 두 차례에 걸친 고려와 몽골 연합군의 일본 침공이 개시되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일본이 승리를 거두며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되로 주고 말로 받다
고려군 사령관 김방경 장군은 전쟁이 끝난 뒤에 “장정들은 모두 노역에 징발되어서 노약자들만 겨우 밭 갈고 씨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그 피폐함이 지금보다 심했던 적이 없었다”라며 개탄했다. 심지어 함선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죄다 벌목했기 때문에 왜구가 약탈하러 와도 이를 퇴치할 배를 만들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큰 손실은, 일본인에게 침공에 앞장선 고려를 정복해야 할 악인의 땅으로 각인시켜 반한 감정이 뿌리내리게 한 것이다. 고려군의 일본 파병은 왕조 일가의 자리보전을 위해 나라와 백성, 그리고 후대 역사까지 희생시킨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대참사’였던 셈이다. 요즘 주요 외교 현안으로 떠오른 호르무즈의 해외파병은 자칫 전 세계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무슬림 세력을 적으로 돌릴 수 있어 위험천만한 일이다. 해외파병에는 신중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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