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포레스트 테크데이 2026
제조 신기술 200여 건 공개
울산 EV공장에 제조 AI ‘폴라리스’ 적용
결함 분석부터 대응책 제시
엔비디아와 피지컬 AI 기반 가상 시운전
2030년 싱가포르 자율제조 시스템 고도화
2032년 이후 휴머노이드 본격 적용
[헤럴드경제(의왕)=정경수 기자] “7월 차체 품질 결함 톱3를 조회하고, 톱1에 대한 원인과 조치 방법을 알려줘.”
질문이 끝나자 인공지능(AI)이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발생한 주요 품질 결함을 유형별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화면에는 결함 종류와 발생 건수가 나타났고, AI는 “재발 방지를 위해 금형 이물질 관리를 강화하고 정기 점검을 해야 합니다”라는 대응 방안까지 내놨다. 복잡한 생산 데이터를 일일이 검색하지 않아도 말 한마디로 공장의 품질 현황을 파악하고 개선 방향까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6일 경기 의왕시 현대자동차·기아 의왕연구소에서 열린 ‘이포레스트(E-FOREST) 테크데이 2026’ 미디어데이 현장. 현대차·기아가 공개한 제조 특화 AI 에이전트 ‘폴라리스’의 작동 모습이다. 이달 첫 양산 모델인 GV90 생산에 들어가는 울산 전기차(EV) 신공장의 실제 데이터를 활용한 사례로, AI가 자동차 생산 현장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줬다.
현대차·기아는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의왕연구소에서 이포레스트 테크데이를 개최한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에서는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SDF), 자동화 기술, 에너지 설루션, 미래 모빌리티 등 200여 건의 제조 신기술을 공개한다. 핵심은 단순히 생산라인에 로봇을 늘리는 수준을 넘어 공장 스스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판단하며 생산 과정을 최적화하는 ‘자율 운영 공장’으로의 전환이다.
최영태 현대차·기아 제조솔루션본부 E-FOREST센터장(상무)은 “미래공장은 단순히 자동화율이 높은 공장이 아니”라며 “사람과 로봇이 협업하고, 데이터와 AI가 스스로 학습하며 공장을 지속적으로 최적화하는 제조환경”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변화의 토대는 공장별로 흩어져 있던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하는 SDF 기술이다. 기존에는 공장마다 별도 시스템을 개발해 비슷한 기능에 중복 투자하고 데이터를 공유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현대차·기아는 이를 공통 제조 플랫폼으로 통합하고 품질·설비보전·생산운영 등의 소프트웨어를 여러 공장에서 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가상 시운전…차량 5000장 촬영해 AI 검사
엔비디아와의 협력도 구체적인 제조 기술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이번 행사에서 엔비디아와 공동 개발 중인 피지컬 AI 기반 ‘버추얼 커미셔닝(가상 시운전)’ 기술을 소개했다. 실제 생산설비를 설치하기 전에 가상공간에서 로봇과 설비의 움직임을 검증하는 기술이다.
기존 디지털 시뮬레이션은 로봇의 움직임을 화면에 구현할 수는 있어도 중력이나 마찰, 충돌 등 실제 물리 현상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가상공간에서 검증을 마친 뒤에도 생산 현장에서 로봇의 동작을 다시 조정해야 했다.
현대차·기아는 엔비디아의 아이작 심과 옴니버스 기반 물리 시뮬레이션 기술을 활용해 이러한 한계를 줄이고 있다. 로봇의 움직임뿐 아니라 설비와 제어 프로그램까지 가상공간에서 함께 검증해 실제 공장과 가상공장 사이의 오차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이번 기술은 엔비디아와의 협업을 구체화한 첫 사례”라며 “현대차의 제조 현장 데이터와 엔비디아의 피지컬 AI 기술을 결합해 실제 공장에서 발생할 문제를 가상공간에서 미리 예측하고 검증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한 ‘버추얼 R&D 랩’도 선보였다. 실제 연구개발 공간을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한 곳으로, 12개의 가상 실험실에서 로봇 이동 경로부터 무선통신 환경, 도장 공정까지 다양한 기술을 미리 검증할 수 있다. 현대차·기아는 가상공간에서 검증한 기술을 실제 신차 양산 준비 과정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차량 품질검사에도 AI가 활용된다. 현장에서 시연한 ‘터널형 완성차 외관검사’ 기술은 차량이 터널 형태의 설비를 통과하는 동안 카메라가 차체 외관을 촬영하고 AI가 결함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차량 한 대를 검사할 때 약 5000장의 초고해상도 이미지를 촬영·분석해 흠집과 외관 이상 여부를 확인한다. 화면에는 결함이 발생한 위치와 크기까지 표시됐다.
이동현 E-FOREST센터 비전TF팀 책임은 “국내외 공장에 적용된 비전 시스템의 95% 이상이 외부 솔루션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종 추가나 설계 변경 때마다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고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현대차·기아는 광학계와 검사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등을 자체 개발했으며, 해당 기술을 ‘기아 화성 EVO 플랜트 WEST’ 공장에 적용할 예정이다.
AI가 용접 로봇 경로 생성…2032년 휴머노이드 투입
생산라인의 로봇도 한층 똑똑해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용접 로봇의 이동 경로를 AI가 자동으로 생성하는 기술이다. 자동차 차체에는 1700개 이상의 용접점이 존재하는데, 기존에는 로봇이 각 용접점에 접근하는 경로를 작업자가 직접 설정해야 했다.
현대차·기아는 AI로 로봇의 이동 경로를 자동 생성하고, 실제 설비와 가상공간 사이의 위치 차이를 센서로 보정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로봇 끝단이 목표 용접점에 1㎜ 이내의 오차로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2027년 6월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사람의 손동작을 흉내 내는 로봇 기술도 공개됐다. 산업용 로봇에 손가락 형태의 그리퍼를 장착해 전기차 섀시 부품에 걸린 와이어를 집거나 떼어내는 작업을 시연했다. 다양한 형태의 부품을 인식하고 집어 올리는 기술로, 현재 초기 개발 단계에 있다. 기존 산업용 로봇으로는 자동화하기 어려웠던 정교한 조립 작업까지 로봇의 영역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반복적인 물류 작업에도 변화가 예고됐다. 현대차·기아가 자체 개발한 물류로봇 표준화 플랫폼은 하드웨어와 주행 소프트웨어를 통합해 제작 비용을 약 30% 줄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충전 성능도 개선해 기존 약 2시간이 걸리던 충전 시간을 최대 12분 수준으로 단축했다. 이 기술 역시 화성 EVO West 공장과 울산 공장에 적용할 예정이다.
현대차·기아는 이처럼 서로 다른 자동화 기술을 하나의 제조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현대차그룹은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를 미래 제조 기술의 실증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개발한 기술을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울산 EV 신공장을 비롯한 글로벌 생산거점에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2030년까지 HMGICS에서 가상환경 기반 자율화 제조시스템을 고도화하고, 2032년 이후에는 미래 신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과 전면적인 자율화 기술을 본격적으로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최 상무는 “자동화의 목적은 사람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안전하고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제조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kwat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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