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주요 도시가 지금 치안부재의 아비규환적 상황이다. 고교생들이 교사 부족과 열악한 교육 환경에 항의하며 시작한 시위에 고물가에 따른 생활고를 호소하는 노조, 기성세대와의 자산격차에 분노한 청년, 그리고 반정부 세력 등이 가세하면서다. 일부 과격 시위대가 시청사를 습격해 불을 지르고 명품 상점을 약탈하면서 도심 곳곳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시위가 폭동으로 변질되는 데도 공권력은 무기력한 ‘무정부 상태’에 직면한 것이다. “어떻게 프랑스인들이 프랑스에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느냐. 정당화할 수도, 설명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고 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프랑스의 참담한 현실을 말해준다. 고령화와 저성장, 재정팽창이라는 공통 과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문화와 낭만, 톨레랑스(관용)을 상징으로 하는 프랑스가 이 지경에 빠진 것은 복지수요를 감당 못하는 재정형편 탓이다. 프랑스는 은퇴 전 소득의 70% 넘게 보장하는 ‘연금 사회’로 유명하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55%쯤인 독일, 영국보다도 훨씬 높다. 이 때문에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19%에 육박한다. 반면 재정을 확충할 성장은 미약하기만 하다. 최근 몇 년간 프랑스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 안팎에 머물렀다. 올해는 0.4%(IMF 전망)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세금을 더 걷고 싶어도 GDP 대비 조세부담률이 이미 43.5%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2위여서 여력이 없다. 재정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제 금융시장은 프랑스를 이탈리아·그리스처럼 재정 위기를 겪는 남유럽 국가 수준으로 취급하고 있다. 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는 최근 연 5%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았다.

마크롱 대통령도 이같은 현실을 타파하려 개혁의 기치를 내걸긴 했다. 연금 개시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개혁을 시도했으나 기성 세대의 반발에 직면하면서 결국 2028년 1월까지 유예됐다. 지난해 7월 추진한 ‘공휴일 이틀 없애기’도 무산됐다. 국민이 연간 이틀 더 일하면 재정이 42억유로(약 7조원) 개선된다는 계산이었다. 주 35시간 근무에 휴가는 연간 2개월에 달하는 상황이다보니 프랑스의 산업경쟁력은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이 인공지능(AI)과 전기차 등으로의 미래 산업 전환에 실패하고, 연금·복지 부담으로 재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반면교사다. AI 대전환 시대에 맞는 혁신 기반 구축으로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박한 과제다. 한편으로 고령화 시대 미래세대의 안전망 확충을 위한 노동· 연금 구조개혁에도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