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화상 예비후보 12월 15일
최종 후보 내년 1월 21일 발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배우 전도연이 한국인 최초의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에서 해고 노동자의 아내 미옥을 연기하면서다.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 리포터(THR)는 23일(현지시간) 전도연의 30여 년 연기 인생을 조명한 기사에서 “아카데미가 전도연을 인정한다면 한국 출신 최초의 여우주연상 후보가 된다”고 짚었다. 오스카 연기상을 받은 한국 배우는 2021년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윤여정이 유일하다. 주연상 후보에 오른 한국 국적 배우는 아직 없다.
전도연과 이창동 감독은 2007년 ‘밀양’으로 만났다. 당시 전도연은 한국 배우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가능한 사람’은 두 사람이 19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다.
THR은 지난해 ‘어쩔수가없다’로 골든글로브 후보에 오른 이병헌과 견주며, 전도연은 해외 작품 활동이 드물어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번엔 연기만으로 여우주연상 경쟁에 이름을 올렸다고 평했다.
‘가능한 사랑’은 ‘버닝’(2018)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이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이다. 정리해고와 파업의 상처를 안고 사는 노동자 호석(설경구 분)과 아내 미옥(전도연 분), 이 부부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담으려는 감독 예지(조여정 분)와 부유한 남편 상우(조인성 분)가 주인공이다. 두 부부가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가까워지고 엇갈리는 164분 동안 계층의 간극과 욕망이 겹겹이 드러난다.
영화는 지난 9월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국제비평가협회(FIPRESCI)상과 아르카 시네마조바니상까지 3관왕에 올랐다. 한국 대표로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부문에도 출품됐다. 국내에선 9월 23일 개봉했고, 미국에선 지난 23일 일부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했다. 넷플릭스 전 세계 공개는 다음 달 6일이다.
THR은 “미옥을 전도연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연기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경쾌하고 호기심 어린 연기 속에서 어떤 표정이나 억양도 단순하게 읽히지 않는다. 가장 즐거울 때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고 평했다.
전도연은 THR과의 인터뷰에서 “미옥은 아주 강한 여성이다. 늘 긍정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게 곧 삶을 지켜내는 방법이다. 저도 꽤 비슷한 사람인 것 같다”고 했다.
‘가능한 사랑’의 미국 상륙 전 전도연은 연극 ‘벚꽃동산’의 뉴욕 공연으로 현지 관객들과 만났다. THR은 연출가 사이먼 스톤이 “(전도연은) 방금 전까지 가슴 아프던 장면이 다음 순간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며 “종잡을 수 없이 변화무쌍한 면모가 무척 흥미로운 배우”라고 말했다는 평도 덧붙였다. 특히 스톤은 이 작품의 주연을 찾기 위해 한국 제작진에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 누구냐”고 물었고, 제작진이 내놓은 답이 전도연이었다고 돌아봤다.
전도연의 연기에 대한 찬사는 베니스에서부터 이어졌다. 버라이어티는 전도연이 “눈부신 연기”로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고 했고, 인디와이어는 ‘밀양’ 이후 20년이 채 안 돼 또다시 “한 세기에 한 번 나올 연기”를 보여줬다고 썼다.
미국 개봉 뒤에는 작품 전체로 호평이 번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마놀라 다지스는 이 감독이 거창한 주제를 앞세우는 대신 날카롭고 울림 있는 일상의 단면으로 이야기에 스며든다고 평했다. NPR은 “‘기생충’이 현란한 솜씨의 히치콕풍 스릴러였다면 ‘가능한 사랑’은 소설에 가까운 풍성함과 인물의 깊이를 지녔다”며 네 주연 배우 모두 올해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고 했다. 데일리비스트는 리뷰에 “올해 최고의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제목을 달았다.
수치도 평가를 뒷받침한다. 26일 기준 미국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선 평론가 59명이 모두 호평해 신선도 지수 100%를, 메타크리틱에선 평론 29편 기준 95점을 기록하고 있다.
넷플릭스도 본격적인 오스카 캠페인에 나섰다. THR은 이달 초 단독 보도에서 넷플릭스가 국제영화상은 물론 작품상·감독상·각본상까지 노리는 다부문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으며, 가장 강력한 카드로 전도연의 여우주연상 후보 지명을 꼽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 예측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로튼토마토 편집팀은 16일 ‘터무니없이 이른 오스카 후보 예측’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가능한 사랑’을 작품상 예상 후보 10편에 넣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파트3’와 나란히 놓은 것이다. 여우주연상 예상 후보 5명에는 산드라 휠러, 줄리앤 무어와 함께 전도연을 꼽았고, 국제영화상 예상 명단 맨 앞에도 ‘가능한 사랑’을 올렸다. 이 감독은 감독상의 ‘이변 후보’로, 설경구는 남우주연상에서 ‘받을 자격이 충분한 배우’로 거론됐다. 다만 작품상 경쟁의 선두로는 로튼토마토와 버라이어티 모두 ‘오디세이’를 지목하고 있다.
이 감독은 THR에 “비영어권 영화의 배우가 오스카 후보에 오르는 일은 여전히 드물고 어렵다”면서도 “복잡하고 겹겹이 쌓인 감정을 살려낸 전도연의 연기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아카데미의 합당한 인정은 한 배우의 성취를 기리는 일이자, 아카데미가 추구하는 변화를 보여주는 실질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능한 사랑’은 “탐내지 말라”는 자막으로 문을 연다.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연작 ‘데칼로그’ 10편에서 빌려온 계명이다. 오스카를 둘러싼 관심에 대해 전도연은 THR에 “한 번도 목표였던 적이 없고, 탐낸 적도 없다”며 “‘가능한 사랑’으로 배우로서 얻고 싶었던 건 다 얻었고, 제가 걸어온 길이 맞았다는 확신도 생겼다”고 했다.
아카데미는 오는 12월 15일(현지시간) 국제영화상 등의 예비후보(쇼트리스트)를 발표하고, 내년 1월 21일 최종 후보를 공개한다. 시상식은 3월 14일(한국시간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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